휙, 하고 갑자기 돌풍이 불었다.
모든것을 날려버릴듯한 바람은 주변의 포도 가지들을 하나둘 부러뜨리고, 거의 대부분의 이파리들을 멀리 날려 보냈다. 양 주변에 매달려있던 여자들도 갑자기 불어온 바람의 벽에 밀려 넘어졌다.
"뭐, 뭐야 저거!?"
포도나무에 엉켜 날아가는 걸 면한 델브링거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쳤다.
공
중엔 전장 10메일 정도되 보이는 세모꼴의 뭔가가 떠 있었다. 재질은 금속이나 도자기와 비슷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광채를 띄고
있었고, 묵직하고 검은 밑바닥을 하고 있었다. 위쪽에도 뭔가 탄듯 검은 얼룩이 져 있었지만 본래는 은색인듯 싶었다. 그리고
'머리'처럼 오니는 부분엔 큰 유리같은것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돌풍은 지금 이 물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뭐무머뭐, 뭐야? 새!?"
"설마, 알비온의 신형 전함인가!"
루이즈와 롱빌의 외침 사이로, 시에스타가 날개같은 부분을 가리키며 답했다.
"아뇨, 저건...아마도 증조할아버지 나라의 배에요!"
시에스타가 가리킨 부분엔 읽기 어렵지만 분명하게 은하제국의 단어가 써져 있었다. 세사람은 당황하며 양을 되돌아 보았고, 양은 아까까지 셋이 조르던 목을 문지르며 상공의 물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보자...맞아. 이건 은하제국의 강습강하정이야!"
상공의 물체는 대기권내 비행을 위한 델타익을 지닌 행성 제압용 전투기였다. 그리고 성지의 뇌격에 맞아 군데군데 그슬리긴 했지만 확실히 로엔그람 왕조의 깃발인 골든 루베(황금사자기)가 그려져 있었다.
"제독니-임!"
갑자기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이 자리의 여성진은 한번도 들어 본적이 없는 언어였다. 양은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가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꿈이 아니었고, 그 목소리는 양이 절대 착각할수 없는 것이었다.
"유...율리안! 율리안이냐!?"
"제독님, 무사하십니까...?아...네. 엄청 무사하신거 같네요."
"휴...어찌어찌 늦지는 않은 모양...이네요."
"아니, 지금 우리 엄청 분위기 깨고 있었지 않아?"
"그렇지, 모처럼 제독님께서 결혼이란 굴레를 벗어나 날개를 펴고 있었는데...마안하게 됐습니다, 제독님"
차례차례로 들려오는 동맹 공용어는 그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했지만 포기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율리안, 아텐보로, 포플란, 쇤코프...그리고 이제르론의 여러 참모들... 그간 양이 꿈속에서 밖에 볼수 없었던 고향 동료들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사선을 넘나드는 동료들간의 재회를 기뻐하기엔 어딘가 뒤가 켕겨왔다.
"그래, 다들...다들 이렇게 와 줬구나! 아니 잠깐...그럼...저 혹시..."
양의 말이 중간에 멈추었다. 대답을 듣는것이 무서웠다. 지금 상황에선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일테지만 그동안 그 누구보다도 듣고싶었던 목소리가 나올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양은 만에 하나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여기서부턴 내가 설명하지."
갑자기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어조는 감정이 없는듯, 아니 얼음바늘이 숨어있는듯한 차가운 목소리였다. 양이 알고 있는 사람 중 동맹·제국을 통틀어 이런 말투를 지닌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었다.
"지금 목소린...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원수?"
"그렇다. 인사가 늦었군. 이 무인 강하선은 장갑을 강화하기 위해 입체영상 투영기를 제거해서 음성밖에 보낼수 없어. 그럼 지금 까지의 어떤일이 있었나 경과를 알려주지."
감정이 메마른 목소리가 양의 차원 전이후 경과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고, 그 내용은 대체로 양이 생각하고 있던 대로 진행됐다. 그리고, 제국과 이제르론이 손을 잡고 자신을 필사적으로 찾아준 것이 너무 고마워 양의 두 눈에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다만, 이 이야기는 제국 공용어로 말해진 탓에 루이즈, 롱빌, 타바사, 실피드, 그리고 제국 공용어를 알고 있는 시에스타마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감동하여 고개를 끄덕이는 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일단 강하정이 통과할수 있을 만큼의 게이트를 열어 두는데 성공한 거다. 그해서 자네를 구출하는데 필요한 함정의 수가 대폭 줄어들었지. 솔직히 이렇게 빨리 게이트를 통과할수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만."
양은 루이즈와 시에스타, 타바사, 델브링거, 그리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은 롱빌에게 오베르슈타인의 이야기를 번역해 주었다. 그리고 실피드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양의 이야기에 놀라움, 불안, 기대감을 드러내며 양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다.
"이야, 이거 참 놀랐다고 양! 그러니까 고향 사람들과 연락은 됐지만 당분간은 돌아갈수 없다, 그말이지?"
"그래. 지금 추세로는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그 말에 양바라기 세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딘가 멀리서 큰 이야기소리가 들려왔다. 기슭을 보니 몇몇 사람이 배를 가리키며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도 낯선 배가 떠있는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흠, 그쪽의 설명이 끝났다면 이야기를 계속 하도록 할까."
드라이아이스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양 웬리. 경의 조속한 신병 탈환이 가능하지 않은 지금, 자네에게 경호 인원을 붙여야 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지금 상황에서 그쪽으로 사람을 보내면 되려 돌아올수 없는 사람이 늘어날 뿐이지. 때문에 경호 인선은 지원자 중에서 최소 인원을 엄선했고, 현재 완성한지 얼마 안된 소형정을 타고 그쪽으로 가고 있다."
"지원자 중에서...말입니까?"
누가 올까, 아까 통신에서 나온 목소리는 율리안, 아텐보로, 포플란, 쇤코프. 그들은 사령실에 있다는 걸테고, 그렇다면 로젠리터 대원중 하나인가?
"경이 가장 장 알고 있고 귀환 불능이란 현 상태에서도 모두가 그의 지원에 납득할만한 인물이야. 지금쯤 대기권에 돌입하고 있을걸세."
대체 누가 오는거지? 양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지나가지만, 딱 이사람이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딱 한사람 있었지만 양은 애써 그를 무시하려고 했다. 그 사람은 오베르슈타인이 말한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이면서 양이 가장 만나고 싶어했던 사람이니까. 하지만 지금 양이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고, 그 오베르슈타인이라면 반드시 보낼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면 제국과 이제르론은 최소 수십시간 전부터 할케기니아와 중앙광장에서의 전투를 모니터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그렇담 아까 일도...전부 사령실 모니터에 클로즈업돼 있었다는것이다. 모두가 그 상황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딸깍,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아 그러니까...이거를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일단 우리들도 말리긴 했는데 무슨일이 있어도 가겠다고 난리여서..."
"내가 말려도 소용 없었다고. 블래스터를 빼 드는데 어떻게 말려."
"뭐 그렇게 됐으니, 미남의 업보라고 생각해 두셔."
양의 아들과 후배와 부하들이 하나둘 말을 거든다. 희안하게도 다들 말을 맞춘듯 한목소리였다. 양은 불안한 마음에 나뭇가지에 걸려있던 델브링거를 챙겼다.
"하아...제독님. 일단 갈수 있을만큼..."
콰광!
율리안의 목소리가 끊기면서 강습강하정이 폭발해 그 아래에 있던 모두를 멀리 날려 보냈다. 저기 하늘 저편에 유성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성은 타르브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양은 델브링거를 움켜쥐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내뺐다.
"여보"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전, 머리위에서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갑작스런 폭발에 날려간 여성진이 황급히 뛰어올라온 뒤에 보인건 운앞에 춤추듯 내려오는 한척의 배였다.
순백색으로 빛나는 바늘 모양이었다. 전장은 10메일 정도. 한사람이 겨우 들어갈 만한 게이트를 통과하고 흙무더기와 정령이 일으키는 마법을 돌파하기 위한 극단적인 형태였다. 그 바늘의 일부가 투명해 지더니 그 안에 앉아있는 여성의 모습이 보였다. 여성이 입고 있는 옷은, 루이즈 일행이 전에 본적있는 양과 같은 디자인의 옷이었고 밝은 갈색의 눈동자와 고동색 머리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프...프레..프레, 데, 데리카..."
양의 목소리는 기쁨보다는 공포로 굳어 있었다. 프레데리카 그린힐. 14살때 엘 파실에서 만난 21세의 양 중위에게 반해 25세에 양과 결혼한 현 이제르론 공화국 대표.
"그래, 정말 오랜만이야. 나, 당신이 반드 살아 있을거라 믿고 있었어."
반면 여성의 목소리는 굳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재회를 기뻐하는 말투도 아니었다.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지만 그것은 정말 기쁨의 미소라고 단언할수 없었다.
"당신이 발견됐단걸 알았을때 이제르론에서 한달음에 달려왔어. 그때 내 기분이 어땠을까, 알지?"
넋을잃고 주저앉은채로 양은 머리를 뻣뻣하게 끄덕였다. 오른손에 쥔 델브링거가 달각달각하고 떨렸다.
"그랬더니 오베르슈타인 각하가 사령관 자리를 넘겨줬어. 지금 황제폐하는 요양중이니까 대신 내가 사령관자리에 앉게 된거지. 그리고 모니터를 보니 당신의 모습이 보였어. 무사히 살아있는 모습이었지. 두달만에 본 모습은 정말 건강해 보였고, 또 다른 여자애들과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어."
루이즈일행이나 마을 사람들은 지금 할케기니아어로 말하는 여성의 말을 듣고 있었다. 때문에 다들 무슨일이 일어난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양을 위해 먼 나라에서 아내가 왔다. 그런데 남편은 현지에서 바람을 피고 있었다. 동정과 경멸의 눈이 양에게 쏠렸고, 엉덩이를 붙인 채 바람둥이는 주섬주섬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래, 당신도 힘들었겠지. 혼자서 다른 세계에 떨어진 채 필사적으로 살려고 한거잖아? 그렇지만 외로움을 참을수가 없어서, 그저 심심풀이로, 단순히 여흥으로...그렇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슉 하고 배의 일부가 열리더니 안에서 쇠막대 같은것이 나왔다. 방금전 상공에서 강하정을 일격에 침몰시킨 레일건의 포신. 그리고 그 포구는 정확히 양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지?"
프레데리카가 아까와 같은 질문을 한다. 양에게 한없이 밝은 미소와 총구를 향하면서. 양은 아내의 모습을 봤다. 예전부터 변함없는 미소를 지어주는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그 다음 양은 마틸다를 봤다. 너무 갑작스런 사태에 할 말을 잃어버린 사랑하는 연인이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성들을 두고 물기가 어린 시선이 보기 흉하게 방황했다.
그리고 양은 저편으로 내달렸다. 델브링거를 움켜쥐고, 왼손의 룬을 빛나게 해 간달브를 전개하고 그가 사랑하고 사랑했던 여인을 뒤로한채 바람같은 속도로 달아났다.
"아하"
어안이 벙벙해진 사람들 사이로 묘한 목소리가 울린다.
"아하, 아하하"
아마 이 목소리는 양의 아내가 내는 웃음인거 같다. 굳이 추정하는 이유는 조종석의 캐노피가 다시 불투명해져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 소형정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섬뜩한 웃음소리와 함께 포신이 움직이고, 포구가 양이 도망친 방향을 향했다.
펑!
총구가 불을 뿜고,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충격파로 저만치 날아갔다. 너무 엄청난 굉음에 귀에서 이명이 그치질 않았다. 저 멀리 날아가는 포탄은 발사선상에 있는 모든 것을 쓰러트리고, 저 산 너머에 커다른 흙먼지를 일으켰다. 몇 초 뒤, 외침과 같은 메아리가 퍼졌다.
"브리밀 이 개*식~!!"
음속을 아득하게 넘는 포탄을 피하면서 양은 영혼 깊은곳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외쳤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소형정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남자 목소리가 들린듯한 방향으로 향했다. 잠시뒤 산 꼭대기에서 산기슭까지 연속적으로 흙먼지가 피어 오르고 몇초 뒤 파열음이 진동했다. 도망쳐 다니는 양에게 피레데리카가 가차없이 화망을 전개하는 모양이다. 아니, 일부러 빗맞히고 있는듯 했다.
"뭐여 진짜,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거야~~~!!!"
양은 간달블의 육체 강화를 최대한 활용해 전략적 철수를 강요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뒤, 옆, 발 밑으로 가차없이 포탄이 퍼부어 지고, 이를 인간을 초월한 체력과 반사신경, 그리고 육감으로 피하는걸 반복했다. 양의 사교성보다 떨어진다 평가받던 신체능력이 간달브의 힘과 더불어 화재현장의 초능력이 더해져 발휘하는 묘기였다. 한발이라도 맞았다간 전설의 검조차 부서질지도 모를 상황에 델브링거가 양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그거야, 잘하고 있어~ '간달브'의 힘은 지금같은 마음의 요동을 통해 발휘되는 거라고. 이야 멋진 요동이야... 어디어디...분노, 후회, 수치, 죄책감...인가? 뭐 확실히 이런것도 마음을 흔들리게 할순 있지만...이야, 여튼간에 나도 놀랐다고. 이런걸로 전설의 사역마의 힘이 발동되다니, 브리밀도 알면 깜짝 놀랄걸."
장검의 말은 누가 들어도 알수 있는 딱딱한 국어책읽기였다. 그렇게 신경을 거스르는 장겁의 말을 되받아 칠 여유는 지금 양에겐 없었다.
"브리밀 이 바보자식~~~!!!"
바람둥이 남자의 공허한 외침이 저녁의 산에 울려 퍼지고 뒤이어 대기와 대지를 뚫는 레일건 소리에 파뭍혀 사라졌다.
사령실의 대형 모니터에도 아내에게 불륜이 들통나 도망쳐 다니는 남편의 모습이 클로즈업 돼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사령관석 옆에 선 의안이 차갑게 바라보고 있었다. 동료들로부터 한명도 빠짐없이 미움받고 있는 군무상서는 레일건 포격에서 도망치는 일전의 적이었던 남자에게 아무 감정과 감상을 갖지 않고 관찰하는 듯 했다. 사령관석 뒷편의 힐데가르트는... 아니, 사령실 안의 모든 사람들은 그런 냉철하기 그지없는 '정론만을 조각한 영구동토의 석판'이라 불리는 남자를 공포에 찬 시선으로 바라고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방금전부터 몇걸음씩 오베르슈타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녀석은 절대 적으로 두고싶지 않아...이길 수 있을리 없잖아."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아니, 군데둔데서 비슷한 말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누가 그런말을 했는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런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특히 유부남. 자신의 손을 전혀 더럽히지 않고, 정치적인 수단 없이, 그저 남편의 외도를 목격시키는 것 만으로 제국의 숙적을 처치한다. 가정사정이므로 제국이 이에 비난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 무자비한 수법을 보고 아무도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런 정적 속에서, 모니터는 여전히 도망치는 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황혼 아래, 여성진은 한숨을 지으며 풀석 주저앉았다. 녹색 머리가 숙인 얼굴을 가렸다.
"하아...짧은 사랑이었어..."
"어? 롱빌 씨, 벌써 관두는 거에요!?"
검은 머리 소녀가 놀라며 왼쪽을 쳐다 봤다. 롱빌은 시에스타에게 힘없이 미소를 지었다.
"응...뭐 양이 아내를 잊지 못한다는건 진즉에 알고 있었어. 그래도 난 양이 좋아서 양이 원하는대로 해 줬어. 그래서 그녀석은 나랑 같이 잔거야. 그런데 아내분이 돌아 왔으니 난 이제 빠져야 할 때지..."
"뭐야 그거! 그래도 돼!?"
이번엔 루이즈가 외쳤다.
"어쩔수 없잖아. 그러기로 약속한걸....그치만 이대로 물러나기는 좀 화가 나는걸."
뒤에서 듣고 있던 타바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쩌려구?"
파란 머리 소녀를 뒤돌아 보며 롱빌은 윙크를 했다.
"때릴거야."
그 말에 할 말을 잃은 소녀들에게 여성이 말을 이었다.
"저녀석을 있는 힘껏 후려쳐서 애처럼 엉엉 울게 만들거야. 잊는건 그 다음.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그 말에 시에스타가 발딱 일어섰다.
"그러면 나도 있는 힘껏 때리겠어요! 나도 그럴 자격이 있는걸요!"
이어서 루이즈도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고는
"그럼 나도 때릴래! 소녀의 순정을 갖고 논 죄를 깨닫게 해 주겠어!"
여성진의 기합소리가 붉은 하늘 사이로 녹아나갔다.
그런 소리에 이끌렸는지논 몰라도 흙먼지와 폭음, 그리고 공중에 뜬 은백색 배가 루이즈 쪽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걸 보고 롱빌은 어휴...하는 느낌으로 일어섰다.
"일단, 저기 저 바보 부부부터 어떻게 좀 할까."
시에스타가 스커트에서 흙을 털면서 말했다.
"좋긴 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루이즈가 풍룡보다 몇배는 빠른 소형정을 향에 지팡이를 치켜 들었다.
"일단 내가 세워 볼테니까 잘 받아줘."
그리고 루이즈는 룬을 읊었다.
양을 쫓던 소형정 앞에 갑자기 빛 덩어리가 나타나고, 이를 피하지 못한 배는 빛에 삼켜졌다.
콰광
배가 폭발하고, 지상에 추락할 뻔한 조종석을 롱빌과 타바사, 그리고 소란을 듣고 모여있던 트리스테인 군 소속 마법사들이 '레비테이션'으로 받아 조심스레 착지 시켰다.
"하아...하아....하아...."
이제껏 내달리던 양은 간신히 루이즈 앞까지 오고는 그대로 쓰러졌다.
피슛 하고 뭔가 튀어오르는 소리와 함께 캐노피가 열리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조종석 안에서 머리카락이 그슬린 프레데리카가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땅에 쓰러진 양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그를 안았다.
"만나고 싶었어, 여보."
"미안, 프레데리카....걱정시켜서 미안해.
남편도 지친 팔로 아내를 안았다. 석양으로 붉게 물든 포도밭. 포격으로 완전히 황폐화됐지만 그 곳에서 전신이 그슬린 아내와 지친기색이 역력한 남편은 서로간의 재회를 기뻐하고 있었다. 이런 바보같은 상황을 주변에서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는 가운데 두 사람은 얼싸안은 두 팔을 풀지 않았다.
며칠 뒤, 마법학원. 오망성을 그린 학원의 탑이 구름 사이에서 아침 햇발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벽엔 타버린 금속 덩어리가 몇개 놓여 있었다. 루이즈의 마법으로 파괴된 소형정과, 그 소형정에게 파괴된 강하정의 잔해였다. 그 외에 아직 은빛을 잃지 않은 소형정 수기가 누워 있었다. 물의 탑의 어느 방에서 젊은 남자의 웃음소리가 울러 퍼졌다.
"전혀 웃을일이 아닙니다, 각하."
웃음은 침대에 놓인 통신기기의 입체 모니터에서 나는 것이었다. 침대에 누운 양은 온 놈을 붕대로 감싼 채로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었다. 침대 옆에는 루이즈, 가장자리엔 델브링거가 기대져 있었다.
"하하하, 이거 미안하군. 하지만 내개서 몇번이고 승리를 따낸 역전의 명장이 설마 불륜이 발각되서 죽을 뻔 하다니..."
그리고는 모니터에 비치는 금발의 젊은이가 다시 웃기 시작했다. 양과 같이 침대에 앉아있는 은하제국의 황제, 라인하르트 1세는 지난 몇년간 한번도 지어본적 없는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팔짱을 낀 양은 한숨을 쉬고는, 자포자기 식으로 루이즈와 장검에게 방금전 대화를 통역했다. 한바탕 웃은 황제는 시종이 건네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고맙다, 에밀. 뭐 어쨋든 무사하다니 다행이군. 사실 지구교도들의 게이트로 인해 사라진걸 알았을땐 더 이상의 만남은 없을거라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모니터로나마 볼수 있게 된건 행운이군."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여러가지가 남았습니다. 제가 무사히 본래 세계로 돌아가 각하를 배알해야 저 자신이 행운아라고 할수 있겠지요."
"그렇군. 경의 말대로야. 하지만 그렇게 먼 미래의 일은 아닐테니 걱정하지 말게. 그때까지 죽지 않도록...아 참. 오베르슈타인이 한 일은 미안하게 됐군. 녀석은 내 선에서 직접 처벌을 내리도록 하지."
"아뇨, 그러실 것 까진 없습니다. 아무튼 그 사람 덕분에 아내와 재회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감싸줄 필요는 없어. 그건 그렇고, 자네 아내는 지금 어디에 있나?"
"주방입니다. 직접 만든 요리를 해 주겠다고 의욕은 넘칩니다만...분명 부뚜막을 보고는 당황해서 고생하고 있을겁니다."
"그런가. 경도 이래저래 고생이군."
"네. 하지만 이곳에서 만난 제 고용주가 저를 계속해서 지켜 줬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양은 옆에 앉은 루이즈를 소개했다.
"A, AN NYOUNG HA SE YO... J, JEO NUN RUIZ PRANSOWAZ Re BLAN Ra BALLIERE IP NI DA. YANG UI JU IN EUL HA GO IT SEUP NI DA"(아, 안녕하세요...저, 저는 루이즈 프랑소와즈 르 블랑 드 라 발리에르 입니다. 양의 주인을 하고 있습니다.)
루이즈는 떠듬떠듬 서투른 제국어로 자기를 소개했다. 한눈에 봐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루이즈. 거기에 '그렇게 긴장하지 말라고~'하고 델브링거가 말을 거들었다.
"음. 짐은 은하제국 황제 라인하르트 1세이다. 짐의 천적인 양 웬리의 생명을 구하고 비호해 주는것에 대해 싶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군."
그렇게 라인하르트가 말하곤 모니터를 들여다 보는 루이즈에게 고개를 숙였다. 빛나는 금발을 한 미모의 황제에게 감사를 받은 루이즈는 수줍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고개를 든 라인하르트는 시선을 다시 양에게 맞추고, 방 한켠에 서 있던 에밀을 불러 들였다.
"전에 얘기한 대로, 경에게는 조금씩 소형정으로 호위 인원가 물자를 보내겠다. 그래서 좌표 산정이 끝날때 까지 견뎌 줬으면 하는군. 물론 제법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경의 정보가 필요해. 제국, 구 동맹, 이제르론...다들 경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어."
"알겠습니다. 시간은 넉넉하니, 이 마법세계에 대한 것이나 앞으로 두 셰게의 미래에 대해서 여러가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일단 가장 시급한 문제는 엘프와 성지에 관한 것입니다만..."
양이 말하는 마법세계의 모험담에, 라인하르트와 에밀이 귀를 기을였다. 중간에 새카맣게 탄 요리를 들고 시무룩해진 프레데리카와, 그녀에게 부뚜막 사용법을 가르쳐 준 시에스타와 학원 밖에 서 있는 소형정과 강하정에 대해 질문이 가득한 콜베르와 레오노르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양의 이야기는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제 28화 황혼에서 새벽으로 END
뭐 고로 28화 끝. 이제 29화가 전후편으로 두개, 30화가 세개, 31화가 한개, 특별편이 네개해서 총 10편 남았네요. 아마 내년말이면 끝낼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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