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콰광-!!
마법 학원에서는 이미 일상이 되 버린 대폭발. 예전에는 또 제로의 루이즈가 마법을 실패했겠거니 하고
지겨워 했겠지만, 지금은 전설로만 전해져 오던 '허무'의 마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주변에 끼치는 민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이번엔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이, 일단 진정하십시오! 뭐, 뭐, 뭐때문에 갑자기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제
복 차림의 루이즈에게서 뒷걸음질 치고 있는 남자는 신관인 듯 하다. 하지만 거룩한 흰색을 띄던 신관복은 지금 곳곳이 그슬리고
너덜너덜해 있었고, 신관모는 이미 형체를 알아 볼수 없을만큼 해져 남자의 벗겨진 머리가 빛을 내고 있었다.
"다시...다시 한번 말해봐..."
루이즈가 지팡이를 쥔 손을 천천히 신관의 얼굴 높이까지 끌어올렸다. 한껏 격양된 관자놀이에 혈관이 볼록 솟아나 있었다. 그 분노를 정면에서 받은 신관은 그 풀에 보기 흉하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다, 다시 한번...이란, 무,무 무슨 마마말씀이신지??"
성난 호랑이 같은 얼굴을 한 루이즈가 다시 신관에게 지팡이를 향하고는
"내.가.뭐.어.쨌.다.고??"
신관은 방금 자신이 입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그리고 그 말에 어디에서 잘못된 것이 있었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그리고 심각하게 돌이켜 봤다. 하지만 그는 대체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그러니까 교황성하께서 '허무'의 사용자인 아가씨를 '성스러운 무녀'로서 로마리아에..."
"누가 성스러운 무녀야-!!!!"
콰과과과과광!!!!!!
그저 위에서 내려온 말을 전했을 뿐인 불쌍한 신관은 폭발에 날아가 버렸다.
"돌아가서 전해! 난...난 브리밀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
뭐, 이런 폭탄선언을 신관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봐---ㅅ! 루이즈----!!!!!"
중앙탑에서 델브링거를 짊어지고, 검은옷을 입은 양이 당황해하면서 달려오고, 아우스토리 광장 한가운데에 널부러진 신관을 일으켰다. 다른 학생들과 교직원들도 몰려나와 치료를 위해 물의 탑으로 그를 옮겼다. 양은 허리에 양 손을 대곤 루이즈 앞에 섰지만, 작은 주인은 흥 하고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루이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아무리 교회나 로마리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이사람에게 화풀이를 하면 안되지."
"됐어! 누가 좋다고 로마리아에 간다고! 난 말야, 그 기도서를 보는것 만으로도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오른다고!!"
"이야~ 놀라운데 아가씨. 허무의 계승자가 브리밀이 싫다니, 로마리아에 가서 이단심문관에게 즉결 처형당하는 모습이 눈에 선한데."
델브링거가 양의 말을 거들고, 그런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은 또 루이즈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에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제 29화 설득
니이드 월, 티와즈 주, 허무의 요일.
게르마니아와의 선양 협상이 이뤄진지 석달이 지나고, 여름방학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곧 있으면 트리스테인 마법학원도 신학기에 들어가게 된다. 가뜩이나 신학기 준비로 바쁜 와중에 이런일까지 일어나니, 모두가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었다.
다시 언급하기도 꺼려지지만, 원래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은 뉴이 월에 앙리에타 공주와 알브레히트 3세와의 결혼식 때문에 휴교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주의 갑작스런 망명, 급격한 선양 선연, 알비온 함대의 습격...등등 학교고 뭐고 신경 쓸 수가 없는 그런 혼란의 연속이 이어지고 그대로 여름방학이 시작됐던 것이다. 그렇게 뉴이, 안스루, 니이도 월에 들어서면서 국내외로 안정이 찾아오고 학원도 신학기에 들어서게 됐다.
결혼식으로 들떠 있던 뷘드보나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마리앙느 여왕과 발리에르 공작. 그들의 입에서 나온 앙리에타의 도주와 그에 대한 대국민 사과. 그리고 트리스테인 귀족들의 의견이 모아진 태피스트리 뒤에 쓰여진 혈판장과 게르마니아로의 선양. 하지만 아직 '루이즈'라는 비장의 카드는 알리지 않았다. 대중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에 왜 귀족들의 의견이 이리도 빨리 모였는지에 대해선 중요하지 않았다. 민중들은 위에서 결정한 일을 왈가왈부하는 데 익숙하지 않았다.
알브레히트 3세와 게르마니아는 분노나 기쁨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대체 무슨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나오냐면서 마리앙느나 공작, 그외 대신들에게 몇번이고 질문을 반복했다. 어찌어찌 이야기가 진행이 되자 게르마니아 사람들도 어느정도 납득을 해 주었으나...이 이야기가 마무리 되기도 전에 크루덴호르프 대공국에서 특사가 왔다. 그 특사는 어째선지 황제 앞에 서 있는 여왕과 공작에게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양과 공작부인이 예상한대로, 특사는 대공에게서 사건보고서를 가지고 왔다.여기엔 크루덴호르프가 게르마니아에 귀속될 것이며, 이를 위해 트리스테인 토벌군에 참가하겠다는 성명서가 포함돼 있었다. 본래라면 이 이야기를 듣고서 분노해야 하는게 맞겠지만, 지금은 그럴 의지가 없었다. 아무리 특사라지만 예고도 없이 갑작스레 들이닥친 것이었고, 토벌을 하려 해도 그 대상국이 이미 옛적에 고개를 숙이고 귀속을 신청해 왔으니 게르마니아 정부로서는 크루덴호르프에 대해서 화낼거리가 없었다.
당장에 듣기에 이해할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자 여왕일행은 귀빈실로 안내돼었고, 알브레히트 3세와 그 휘하 대신,장군들은 머리를 맞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 것인지, 실제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그렇게 회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라 로셸에서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양 함대에서 알비온 함대를 괴멸시켰으며, 포로의 수는 수천에 달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실제로는 양의 계책이었지만 지령서는 추기경의 이름으로 나온 것이었다. 이에 게르마니아 정부뿐 아니라 여왕과 공작도 한층 용기를 얻게 됐다. 이렇게 경천동지할 정보가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뷘드보나가 혼란스러워 질 것이고 그에 따라 게르마니아의 정보가 걸러지지 않고 여왕에게 들어올수 있게 된다. 덕분에 협상은 여왕과 공작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며칠 후, 트리스테인 귀족들의 의견이 규합됐다는 것과, 공작의 삼녀가 '허무의 계승자'라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허무의 재림에 게르마니아가 공작에게 추궁을 했지만 '선양과는 관계 없다. 그리고 더 이상 허무에 대해 듣는것은 그쪽에게 불이익이 될 것이다'는 말만 돌아왔다.
이렇게 되자 곤란해진건 게르마니아였다. 공주가 혼약 도중에 옛 남자를 그리워 해 알비온으로 도주한것은 명백히 트리스테인의 실책이며, 알브레히트 3세에게 있어 최대의 모욕이자 게르마니아의 국치였다. 하지만 트리스테인이 진심으로 사과에 나서고, 선양의 의지를 보여왔다. 믿기지 않는 속도로 국내 의견을 통합해 혈판장까지 만들어 왔다. 이렇게까지 해오는데 거기에 분노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알브레히트 3세의 명예가 지켜진 것이다. 이리하여 트리스테인과 게르마니아는 서로 화해하기로 결정했다. 싸우기도 전에 화해하는 신묘한 결정이었다.
트리스테인과의 화평은 좋은 것이나, 제일 곤란한 것은 실제로 선양이 진행됐을 경이였다. 혈판장이 보여주는 것은 트리스테인은 지지 기반이 굳건하다는 것. 이런 국가가 게르마니아에 들어오게 되면 기존의 도시국가들을 아득하게 웃도는 국내 최대세력이 된다. 다시말해 지금껏 유지되 오던 게르마니아의 파워 밸런스가 무너지게 된다. 만일 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 인질로서 마리앙느의 유배나 '허무의 계승자' 루이즈의 신변 인도를 요청하게 되면 트리스테인쪽에서 반대여론이 일어나 게르마니아를 뒤엎을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게르마니아가 트리스테인을 흡수한게 아닌 트리스테인이 게르마니아를 납치하는 것이 되 버린다. 무엇보다 곤란한것은 루이즈의 존재였다.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정말 허무의 계승자라면 이는 알브레히트 3세에게 있어 매우 곤란하게 된다. 무슨 수를 써도 시조 브리밀의 후계자라는 위광을 넘어 설 순 없으니까. 또 정략결혼을 하지 않는 이상, 루이즈가 가진 카리스마에 자신의 존재는 가려지게 된다. 오히려 시조의 후계자라는 것을 앞세워 자신에게 반역을 일으키는 무리도 나타날수 있다.
뭐, 루이즈에 대해 보고를 받은 황제는 머리를 움켜 쥐면서 나직하게 한마디를 읊었다.
"......무리."
권세에 대한 욕심이 많은 황제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루이즈는 황제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덕분에 공작이 언급한 대로 루이즈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며, 황제는 '그대들의 마음에서 이미 충분히 사과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때문에 선양할 필요는 없다. 이제 양국은 지나간 일에 대해선 잊고, 함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자'며 무릎을 꿇은 마리앙느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렇게 해서 게르마니아는 황제의 관용과, 브리밀로부터 내려오는 왕가에게 뒤지지 않는 권위를 얻었고, 트리스테인은 독립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선양을 언급할 정도로 양보한 트리스테인이지만, 거기에 전혀 욕심이 없을만큼 통찰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파혼의 책임은 아직 남아있으며, 알비온에 대한 공동전선이 시급했다. 마자리니는 전 재산을 몰수하고 성에서 추방됐지만, 추기경의 지위는 교회에서 내려온 것이므로 세속의 왕이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었고, 교회도 거기에 대해선 아무 언급이 없었다. 사실 그를 처형하지 않은것은 교회에 대한 배려와 향후 이용가치를 알아본 황제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마리앙느에 대한 처분은 불문에 부쳤다. 단, 손해배상으로서 매년 조공을 바치고 마리앙느가 직접 조공단에 참가하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크루덴호르프 대공국은 공식적으로 게르마니아에 귀속됐다. 만일 트리스테인의 영토를 할양받게 되면 게르마니아에서 친 트리스테인 세력이 늘어나게 되고, 기존 도시국가에 압박을 받게 된다. 때문에 기득권을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지나친 욕심을 화를 부른다'는 탄원서를 보내고 그 덕인지 더 이상의 영토 요구는 없었다.
국방측면에선, 이전에 예정돼 있던 군사동맹보다 더 강력한 협력체제가 구축됐다. 유사시 트리스테인 군대는 게르마니아 군의 지휘를 받게 되며, 이를 위해 게르마니아 군 일부가 트리스테인 내에 주둔하게 됐다. 이쪽은 이전부터 양국이 논의해 오던 분야라 게르마니아는 여러가지 요구를 해 왔고, 여왕과 공작은 어쩔수 없이 이를 수락했다. 또 양국간의 관세 폐지, 인재 교류 등의 세세한 의제가 나오고, 이는 차후 공식적인 자리에서 천천히 결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이런 협상이 본래대로라면 결혼식 일정으로 계획된 기간내에 이뤄졌다. 이 모든 이야기가 끝날 무렵엔 크루덴호르프 대공국이나 기타 도시국가들을 정리하고 새로운 연방을 구성하게 될 것이란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그리고 이렇게 마련된 신체제 구성을 위한 협상은 석달 뒤에도 이어진다...
배경을 바꿔서 다시 트리스테인 마법학원.
가엷고 딱한 신관이 정신을 되찾았다.
"듀레스 주교, 정신이 드셨습니까!?" 라고 말하며 신관의 용태를 걱정하고 있던건 오스만이었다. 그 일이 있던 직후 계속해서 치료에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변에 다른 수계 메이지나 학생들도 불안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더더욱 어둡게 만드는 말을, 주교가 외쳤다.
"서, 성직자에 대한 명백한 살의! 시조 브리밀에 대한 저주! 이것으로 보아 발리에르 가의 삼녀는 의심할 바 없는 이교도입니다! 이 일은 반드시 교황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아니, 지금 내 권한으로 바로 이단시..."
콧김을 내뿜으며 종교재판을 집행하겠단 말을 하려하 했지만 중간에 말이 끊겼다. 창밖에서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재판의 피고인인 루이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창 밖에는 루이즈가 듀레스 주교를 항에 작은 혀를 내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 앞엔 나참...하고 어깨를 으쓱이는 양이 조종석에 앉아 있었다. 아까의 날카로운 소리는 그녀가 타고있는 은빛 비행체에서 나는 것이었다. 흙이나 잔디가 붙어 좀 얼룩이 지긴 했지만 은빛을 발하는 길쭉한 보트같은 것은 물의 탑 옆에 체공하면서 창문으로 주교에게 루이즈의 모습을 투광하고 있었다.
"자, 일단 집에 돌아가자."
뒷자리에서 활기차지만 한편으로 미안한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아...이걸 공작께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하나..."
"꿍얼대지말고 빨리 가자면 가!"
소환 게이트 통과용 복좌식 소형선 '드라트(Draht. 철사, 바늘이란 뜻)'의 앞좌석에 앉은 양이 드라트를 상승시킨 뒤, 학원상공을 선회하곤 단숨에 저 멀리로 날아갔다.
"도망쳤군."
오스만이 하늘 저편을 바라보며 나직히 중얼거렸다. 한편 주교는 어안이 벙벙해져 한참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뭡니까 저건...돛이라던가 기타 나는데 필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풍룡보다 빨리 날아가는 배라니..."
그 말은 들은 학원의 사람들은 서로 쓴웃음을 지었다.
"아까 그것은 양의 국가에서 온 배입니다. 본 학원에 줄이저 서 있던것을 보셨는지?"
"보, 보긴 했지만...그때는 뭔지 몰랐습니다. 설마, 저게 배였을 줄은..."
하고 듀레스는 창밖을 보았다. 오스만이 가리킨 초원에는 같은 모습의 기체가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하지만 저기엔 '드라트'같은 조종석은 없다. 저 무인기는 모두가 컨테이너 운반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집으로 돌아온 거야."
루이즈가 사정을 설명하자 좁은 콕핏에 키르케의 달콤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어머나, 대체 무슨 일이람. 지금 우리도 발리에르 가로 가고 있는데."
"어, 이제 학원으로 와야하는거 아냐?"
"아직 일주일 남았거든요? 그것보다 그 조약식 준비때문에 엄청 바빠. 발리에르령과 체르프스트령을 잇는 가도의 보수확장이 아직 안 끝난데다 영내의 상회나 길드가 그쪽 공작님과 면회를 요청하지...여튼 이런저런 할일이 많아."
두 사람이 통신기로 이야기 하는동안, 저편 언덕위의 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언덕위에 서있는 집은 집이라기 보단 성이라 부르는게 맞을것이다. 트리스테인 왕궁에 뒤지지 않는 크기의 성, 높은 성벽과 깊은 해자를 두고 곳곳에 세워진 첨탑, 그리고 마법학원에 있는 것과 똑같은 은색 소형정이 몇기 서 있었다. 여기 있는것들은 다 무인 수송선이었고, 반대편에서 또 다른 드라트가 날아오는것이 보였다. 속도를 줄이자 캐노피가 투명해 지고, 반대편 기체에 타고있는 프레데리카와 손을 흔들고 있는 키르케의 모습이 보였다.
성 옆에 착륙한 2기에서 양과 루이즈, 프레데리카와 크고 탐스런 엉덩이를 시트에서 빼내는 키르케가 내렸다. 갈색이 감도는 붉은 머리는 자기가 탔던 배를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우와~ 역시 대단해! 좀 좁다는거 외엔 승차감도 괜찮고말야. 우리 집에도 한대 갖고가고 싶은걸."
그 말에 프레데리카가 미소를 지으면서 미안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럴순 없어요. 지금 당장에라도 넘겨 줄 수는 있지만 이걸 조종할수 있는건 저와 남편 뿐이랍니다."
"그러니까 그 조종법을 가르쳐 달라구요! 대충 원리만 가르쳐 주면 나머지는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요!"
손을 모으고 고개를 조아리며 키르케가 부탁해 보지만, 프레데리카는 영 난처한 얼굴이었다.
"그렇게 말해도...조종법은 고사하고, 키르케 양은 모니터에 표시되는 문자도 읽을수 없잖아요?"
"으으...그렇담 그쪽에서 다른 사람을 파견해 주실순 없나요? 이 드라트 전용 조종사로 고용하는 식으로 말예요."
"그쪽은 더 힘들어요. 지금 저희 나라에서 제가 아닌 다른사람을 파견하는게 매우 힘든 상황이라서..."
그 말에 키르케가 어깨를 떨어트리며 신음했다. 그런 두명에게 '이봐~ 빨리 안와~!! 치이 언니를 기데리게 할 셈이야~?'라고 루이즈의 말소리가 날아왓다. 저택의 입구를 보니 문 앞에서 루이즈와 양, 마중나온 하인들과 그 사이에서 두사람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카틀레아와 시에스타의 모습이 있었다.
"뭐, 일단 안에서 이야기 하자구요."
키르케는 마음을 다잡고 루이즈에게 발길을 돌렸다. 프레데리카도 생긋 웃으며 뒤를 따랐다.
현재, 프레데리카 이외의 인원은 파견되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보내진 것들도 다 무인기로, 라인하르트 황제는 호위 병력을 보내려고 했으나 전해져 온 보고를 받고는 파견을 중단할수 밖에 없었다. 이제르론 측도 마지못해 납득했다. 심지어 그 비텐펠트도 그 결정에 납득했다.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은, 게이트를 통과한 이후로 "할케기니아 어를 말했다."
때문에 그녀는 할케기니아 사람들과의 대화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은 사람들은 할케기니아어를 할수 없기 때문에 통신기로 제국·동맹 사람들과의 대화를 할 때는 통역이 필요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스테이션의 사람들은 'WOW! 이거 엄청 편리한데? 역시 마법은 대단해!'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떠한 언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귀로 들은 것을 이해하고, 문장을 만들어 입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일련의 작용은 대뇌의 신경섬유로 연결괸 브로커 영역과 베르니크 영역에서 처리되는 것으로, 브로커 영역에서는 말하기, 베르니케 영역에서는 듣기를 담당하고 있다. 새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이 두부위에 새로운 신경다발을 연결한다는 것으로, 프레데리카의 경우 게이트를 통과한 순간 두 영역간의 새로운 신경다발이 '생겨났다는 것'을 의미했다. 즉, 게이트에는 중추 신경계를 아주 완벽하고 순식간에 조작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힘이 작용하는것은 정말 언어와 관련된 부분만일까? 만약 기억이나 성격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소환 게이트는 본디 '사역마'라는 이름의 노예를 얻기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주인에 대한 반역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다는 듯 하다. 그렇기에 보통이라면 인간에게 적대적이어야 할 샐러맨더 같은 환수들도 사역마로 부릴수 있는 것이다. 아니, 본디 인간의 사고방식을 따라갈 수 없는 작은 개구리도 사역마로서 부릴수 있는 시점에서 이미 명백하다. 뇌 개조뿐 아니라 뭔가 더 강력하고 무궁무진한 무언가가 소환 게이트에 있고, 이것은 소환게이트를 통과하는것이 결코 '안전하지많은 않다'는 것을 이야기 한다. 이 보고를 들은 라인하르트는 '생물의 게이트 통과를 금지'하였고, 이제르론도 이에 동의했다. 적어도 양과 프레데리카의 의학적 데이터를 검토해 게이트 통과에 의한 중장기적 변화를 관찰한 뒤 유해한 작용이 없는것이 확인될 때 까지 소환게이트의 이용은 금지됐다.
양의 정보를 통해, 현재 신변의 안전은 충분히 확보돼 있으며,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이 호위로 가있는것도 충분하다고 결론이 났다. 프레데리카 양은 양과는 다르게 백병전이나 사격실력이 뛰어났으니까. 또한 '전력을 할케기니아에 과잉 집중 시키면 현지의 중요한 문화·풍속이 파괴된다.'는 예술가 제독, 메크링거의 필사적인 진언도 한몫 했다. 그리하여 현재 파견된 인원은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 혼자. 무기와 탄약도 드라트 2기에 수납된 소총,권총과 예비 에너지팩 등 소화기 뿐이다. 이제껏 무인기에 실려온 물품은 두 사람의 신체 데이터를 조사하기 위한 의료장비와, 할케기니아의 영상·생물 자료를 수집·저장·전송하기 위한 촬영·통신·실험 자재, 피복류와 기타 일용품, 장비 유지 ·보수 자재들이었다. 거기에 밤이 되면 학원에 줄지어 늘어선 장비와 서형정에 접근하는 수수께끼의 그림자가 있었던가 없었던가.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해 초격이나 폭발로 파괴된 강습강하정과 시작형 드라트를 옮기는 사람들도...
저택의 어느 방, 카틀레아가 캐노피가 달린 침대에서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캐노피 외에도 각종 기계장치가 설치되 있었다. 이곳은 간이 의무실 이었다. 그녀의 손, 팔, 관자놀이에는 센서가 부착되 있고, 센서로 측정된 데이터가 침대 옆에 놓인 단말기에 표시됐다. 그리고 프레데리카가 옆에서 진지한 눈으로 그 데이터를 보고 있었다.
"야마무라 군의관, 어떤가요?"
그러자 단말기에서 백의를 입은 장년의 남자가 대답했다.
"증상은 많이 가라 앉았습니다만 현재로서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지금까지 전송된 데이터를 보면 유전질환이 의심됩니다만, 현재 할케기니아인의 DNA데이터가 부족하고, 또 이쪽에는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 구조도 발견돼서...입체 구조를 모르면 활성부위도 알 수 없습니다. 때문에 SBDD(Structure Based Drug Design, 단백질 구조분석을 통한 신약 개발)에 좀 더 시간을 달라는 것이 의료반의 의견입니다."
야마무라 소령의 동맹공용어는 할케기니아 어로 자동번역이 됐지만 루이즈나 키르게, 시에스타, 델브링거는 내용 자체를 이해할수 없었다. 때문에 양은 군의관의 생화학강의를 알기 쉽게 설명해야 했다.
"아...그러니까 아직 연구 중이다 그말이군요? 때문에 지금처럼 안정성이 확인된 링겔 점적과 할케기니아의 약으로 증상을 억제하..."
그 순간 군의관이 어흠, 하고 황급히 헛기침.
"그,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 드려야 했는데, 이거 죄송합니다."
하고 뺨을 물들이는 군의관에게 카틀레아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HANGSANG GAMSAHAPNIDA. DAUMEDO JAL BUTAKDEURIPNIDA."(항상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툰 동맹 공용어로 감사의 말을 들은 구 동맹 출신 군의관의 뺨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루이즈가 신관을 날렸던 때와 같은 니이도 월, 티와즈 주, 유르 요일, 알비온의 수도 롱디니움의 하뷔란드 궁전.
열 여섯개의 기둥이 천장을 지탱하고 흰색으로 둘러싸인 장엄한 공간인 화이트 홀과 그 중심에 있는 거대한 원탁은 평소엔 신성 알비온 공화국의 장관과 장군들이 회의를 하는 곳이었다.
"성지 탈환. 우리는 성하의 말에 따라, 시조께서 이루고 싶어했던 목표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가장 상석에 앉은 젊은이를 향해, 현란한 망토와 왕관을 쓴 남자가 조용히 말을 걸었다. 지금 이 넓은 홀에는 5명 밖에 없었다. 한 사람은 신성 알비온 공화국의 초대 황제 올리버 크롬웰. 황제여야 할 그는 상석에 앉은 사람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평소의 고양한 듯한 말투도 지금은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은 어두운 보라색 신관복에 원통형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는 그 사람이 할케기니아의 신관과 사원을 총괄하는 로마리아 교황임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교황은 젊었지만 자신이 걸친 신관복을 자랑하는 방약무인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눈매는 부드럽고, 콧날은 조각과 같이 날카로웠다. 매끈한 입은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때문에 지나가는 모두가 뒤돌아 볼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원래 일개 주교에 지나지 않던 황제로선, 그리고 형식상으로 할케기니아의 모든 왕보다 지위가 높은 교황에겐 경의를 표할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두사람과 함께 있는 두 남녀는 웨일즈와 앙리에타였다. 두 사람 모두 교황과 황제의 회견에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앙리에타는 결혼식장에서나 어울릴듯한 양팔에 어깨까지 닿을만큼 긴 백색 오건디 장갑을 끼고 있었다. 오른쪽의 의수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마지막 한명, 황제의 비서인 셰필드는 황제의 등 뒤에서 로브로 얼굴을 숨긴채 묵묵히 서 있었다.
얇은 금실같은 신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로마리아 교황이 웃었다.
"빅토리오라 불러 주십시오, 난 딱딱한 격식 같은데에 신경을 쓰지 않아요. 때문에 본국의 신관들은 항상 절 꾸짖습니다만."
"당치 않은 말씀이십니다. 3년전, 성하의 즉위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벽촌의 주교였던 몸으로서 성하의 존명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습니다."
빅토리오 세레바레가 성 에이지스 32세로서 즉위식은 3년 전, 할케기니아의 각 왕은 참석하는것이 당연했지만 그 당시 크롬웰은 알비온의 한 교구를 담당한 일개 주료, 당연히 그런곳에 참석할 수 있는 신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크롬웰은 감탄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시조의 방패'라고 불리는 성자의 이름을 계승한 32번째 교황이 스물을 갓 넘긴 어딘가 엉뚱한 면이 있는 청년인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다. 아니, 애시당초 교황 전용함인 성 마르코 호가 알비온에 온것 부터가 이례적인 사태였다. 시조로 부터 받은 왕권을 타도하고 즉위한 황제는 그 권위를 세세히 따지는 사람에게 맞아 죽어도 이상한 것이 아니다. 거기다 원래는 일개 주교에 불과한 신분, 황제가 로마리아에 가는것은 몰라도 교황이 알비온에 온다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애시당초 교황이 친히 타국에 방문한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일은 교황이 황제의 권위를 인정해 준 것이며, 동시에 이를 거래의 재료로 사용하는 일이 가까워 져 왔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성하께 한가지 여쭈어 볼 것이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말해 보세요."
"이번의 갑작스러운 행차의 이유에 관해서 입니다."
성 에이지스 32세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크롬웰 경은 근시일 내에 이루어 질 트리스테인과 게르마니아의 동맹, 나아가 연방제로의 전환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그 질문에 황제는 경솔하게도 노골적으로 떫은 표정을 지었다. 말석에 앉아있는 앙리에타도 고개를 숙인다. 지금 민중의 관심은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국에 쏠려 있었다. 이 모든 정보는 각국 고위 인사들에게도 소문이...아니, 이미 트리스타니아에서 열리는 건국 기념식 및 조인식의 초대장이 온 시점에서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이 초대장은 로마리아, 갈리아 뿐만 아니라 알비온 황제인 크롬웰에게 까지 받았다. 아직 정식 국교조차 없는데도 불구하고.
앙리에타의 망명사건 이후로 알비온에도 많은 변화가 일었다. 앙리에타가 망명한 것은 정치적으로 매우 큰 성과였다. 하지만 라 로셸에 대한 기습 함대는 괴멸, 포로 수천명을 위해 지불된 몸값만 해도 상당한 지출이었다. 군사적 패배에 의한 국고 부담, 그리고 곳곳에서 산발하는 부작용을 가리기 위해 이전에 양이 머릿속에서 예상하던 대로 각 지방의 미담을 과장하고, 마자리니, 알브레히트 3세, 발리에르 공작에 대한 험담을 퍼트리면서 실추당한 황제의 권위에 대한 비판을 피하는 나날이었다. 하지만 게르마니아와 트리스테인의 공멸 혹은 군사 동맹의 파기는 이루어 질 줄 알았지만 이 것은 되려 군사부문 뿐만 아닌 정치·경제적인 협력까지 이루어지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다행히 이에 대해서 황제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작았지만 지상 침공과 할케기니아 통일이 매우 어려워 진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거기다 공식적인 발표는 없지만 트리스테인에 '허무'의 계승자가 나타났다는 소문도 있다. '이 땅에 평화를!'이란 신탁을 내려 레콘기스타의 성지 회복 운동에 대항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브리밀 신도를 레콘기스타에 합류시키는 데도 지장이 따랐다.
알비온에서 영지와 작위를 얻어 확실한 지위를 구축한 와르드의 정보 덕분에 '허무'의 계승자라는 루이즈와 그 사역마에 대한 일은 황제도 알고 있었다. 때문에 더더울 지상에의 침공을 주저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몰라도, 군사적으로는 절대 이길 수가 없었다.
황제는 알아차렸다.
양이 레콘기스타의 계획을 알아채고 이를 뒤에서 부터 무너트리는 지장이라는 것을.
이제 양국은 하나가 돼 알비온과는 비교가 안될 대국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황제에게 발송된 초대장은, 크롬웰을 모살할 계략이 아닌 '레콘기스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는 입장 표명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황과 황제에게 불편한 소문이 '트리스테인'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행외는 결단코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성지 탈환운동에 감히 토를 달고 이의를 제기해 오다니! 거기다 그 이유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시조의 마력이 폭주해 천년전에 성지는 사라지고 엘프들이 폭주하는 허무의 힘으로부터 세계를 지키고 있었다.'니! 다른 것은 참아도 시조에 대한 모욕은 참을 수 없습니다! 거기다 그 폭력적이고 무례한 엘프따위가 세계를 지켰다는 얼토당토 않은 말을 누가 믿습니까!?"
성직에 있었지만 신앙심이라곤 눈꼽만치도 없던 황제였지만 이때 보여준 노기는 연기 이상의 것이 포함돼 있었다. 그만큼 황제에게 그 '이유'는 지극히 비상식적이고, 자신에 대한 정치·종교적 입장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는 교황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그 말 대로입니다. 거기다 이 믿기 힘든 폭언을 한 것이 시조의 후계자를 자청하는 루이즈라는 소녀라는 겁니다. 그 마녀는 브리밀을 혐오한다는 말은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고 하더군요."
"그저 광인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성하께서 거기에 신경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맞습니다. 말 그대로 헛소리지요. 시조의 마법계통인 '허무'를 이어받아 허무의 후계자를 자청하면서 시조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에 빠져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거기에 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신앙이 바닥에 떨어졌다...그렇게 봐야 겠지요. 이교, 아니 사교(邪敎)가 퍼지고 있는 겁니다. 아마 연방 설립이라는 이면엔 시조의 자애가 충만한 할케기니아를 타락시키려는 속셈이 있을겁니다. 그렇다면 그 루이즈라는 소녀도 성녀를 사칭하는 마녀의 악의가 숨어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교황과 황제가 루이즈를 광인·마녀라고 부른다. 그 이름이 거론될 때 마다 앙리에타의 얼굴은 창백해지고, 잘려나간 오른팔이 조금씩 떨렸다. 이를 본 웨일즈가 앙리에타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조용히 그녀의 안부를 살핀다.
"무슨 일입니까?"
교황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웨일즈였다.
"제 약혼녀인 앙리에타는, 방금 성하께서 거론하신 그 마녀에게 오른팔을 빼았겼습니다."
그 말에 앙리에타는 채찍에 맞은 것 마냥 움찔 하고 놀라고, 곧이어 얼굴을 웨일즈의 가슴에 묻고는 눈물로 뺨과 웨일즈의 가슴을 적셨다. 그런 앙리에타의 머리를 웨일즈가 쓰다듬었다. 그런 두사람을 보고 빅토리오의 얼굴빛이 흐려졌다.
"대화가 신중하지 못했던 점은 미안하군요. 그렇다면 어디 조용한 곳에서 쉬는것이 좋겠지요."
그 말에 웨일즈는 교황과 황제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고 앙리에타를 부축해 홀을 나갔다. 그리고 교황은 비서를 살짝 보고는 황제에게 다시 청했다.
"미안하지만, 지금부터는 저와 크롬웰 경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그 말에 황제는 눈을 뜨곤 땀을 비적비적 흘리면서 비서와 황제 사이를 번갈아 보고, 셰필드는 인사를 한 뒤 홀에서 퇴장했다.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딘가 불안해 하는 황제와 부드러운 미소를 되찾은 교황만이 화이트 홀에 남았다.
"자...크롬웰 경.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의 계통입니다."
어떤 수식어도, 감정도 들어있지않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에 황제의 동요는 한층 더 강해졌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흘러 넘치고, 시선은 허공을 방황한다. 그런 상황에서 결심이 섰는지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대답했다.
"여, 역시...아시는군요..."
"네, 당신은 허무의 계승자가 아니지요. 무엇보다, 당신은 마법을 쓸 수 없는 평민이지 않습니까."
태연하게 말을 이어가는 젊은 교황에게 황제는 다시 큰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군요....아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지요. 시조 브리밀을 섬기는 교회를 총괄하는 분께서 거기에 속했던 일개 주교에 대해서 모르실 리가 없겠지요."
"그 말대로입니다. 사망자를 소생시키는 마법...그 반지의 힘입니까?"
황제는 포기한 듯, 교황에게 반지를 보여 줬다.
"네...이건 안드바리의 반지라고, 사자를 소생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만 자세한 것은 저도 잘 모릅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이라..."
"전설속의 매직 아이템 이로군요. 그렇다면 이걸로 웨일즈 황태자를 소생시킨 겁니까? 아니, 설마 앙리에타 공주도?"
"아뇨, 그들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단 웨일즈님에겐 약간의 설득을 했을 뿐입니다. 진정한 믿음에 눈 뜰수 있게 시조의 가르침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렇군요, '설득'이라... 그렇담 앙리에타 공주도?"
"아닙니다, 앙리에타 공주에겐 그 '설득'조차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지 웨일즈 님에 대한 사랑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크롬웰의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교황이 아니다, 그 뜻을 알아차린 후 변함없이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입에서 전직 주교에게 치명타가 될 말이 나왔다.
"그렇담 그 반지를 준건 방금 전 비서로군요?"
이 질문에 크롬웰은 다시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 반응은 Yes라 대답한 것과 마찬가지, 교황은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이거...뭐 애초에 당신같은 삼류에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홀의 입구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겁없이 미소를 짓고 있는 셰필드였다. 교황은 의자에서 일어나 비서를 연기한 여자에게 입을 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참된 황제이자 레콘기스타의 맹주시여."
그 말에 셰필드는 후드를 벗고 수척하지만 아름다운 얼굴을 드러내 교황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히 교황 성하를 속인 것을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제 이름은 셰필드, 하지만 황제도 맹주도 아닌 그저 한사람의 브리밀교 신자에 불과합니다."
교황은 그녀의 이마를 보곤, 예를 차린 그녀에게 죄를 묻기는 커녕 밝은 미소와 함께 손을 뻗었다.
"우리들이 여기에서 만난것도 다 시조의 인도 덕분이겠지요. 자, 같은 신을 믿는 형제자매로서 이야기를 이어가 봅시다."
그리하여 크롬웰은 겨우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셰필드는 자리에 앉자마자 빅토리오에게 물었다.
"다른것은 둘째 치고, 어떻게 반지에 대한 것을 아셨나요?"
"어림짐작이었습니다."
그 말에 크롬웰은 의자에서 굴러 떨어질 뻔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교황은 낄낄대며 자신의 추리를 밝혔다.
"죽은자를 소생시킨다는 점에서, 생명을 관장하는 물의 마력을 지닌 것이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에게 거짓된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전설의 매직 아이템, 안드바리의 반지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거기에 마법을 쓸 수 없는 평민출신의 주교가 갑자기 '허무'를 칭하면서 황제의 지위에 올랐지요. 그런데 크롬웰 공을 보면 손가락에 물의 마력을 띈 고급 아이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지요."
이를 들으면서 크롬웰은 연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있었고, 셰필드는 겁없는 미소를 유지하면서 교황의 말을 경청했다.
"자, 여흥은 여기까지 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봅시다."
교황은 어흠, 하고 일부러 헛기침을 하고 다시 두 사람에게 말했다.
"성지탈환이라는 레콘기스타의 목표, 사실입니까?"
비서였던 여자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물론이죠, 그래서 제가 알비온에 왔습니다."
"그 말은, 당신 주인의 의지입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성하께서 이미 알고 계신게 아닌지?"
태연하게 답하는 셰필드를 보고 크롬웰이 뒤로 넘어간다.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는 교황에게 간신히 몸을 추스린 크롬웰이 입을 열었다.
"서, 서서서서성 성하! 주인이라니, 어째서 그분에 대한 것까지...!"
"그야 봤으니까 그렇죠."
하고 빅토리오는 셰필드의 이마를 가리켰다. 거기에 있는것은 사역마의 룬이었다.
"아, 보기도 봤지만 이게 '허무'의 사역마의 룬이라는건 아는사람 얼마 없을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때문에 당신의 주인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군요. 지금 당장 전해 줄 수 없을까요?"
"알겠습니다. 갈리아 수도 류티스의 '그랑트로와'에서 기다리신다는군요."
"그랑트로와?"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의 말에, 빅토리오는 처음으로 놀랐다.
아 설명 하나 참 길다. 자전거 만화 할때도 설명 길어지면 짜증부터 확 나오는데 이건...아하하하
그래도 이런 설명을 설명문으로 끝내서 다행이지, 정말 희곡처럼 작중인물의 말로만 했다면 진짜 양에 치여서 빈사상태에 빠졌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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