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스테인과의 국경에서 약 1000리그 떨어진 곳에서 발원해 대양으로 흘러가는 시레 강이 수도의 중간을 관통하며, 인구 30만을 자랑하는 할케기니아 최대의 도시이기도 하다. 시레 강의 삼각주에 위치한 구 시가지에서 시작되는 본 팡 거리를 따라 교외방향으로 말을 타고 30분정도 가다보면 그곳엔 장대하고 화려한 모습을 자랑하는 베르사르테일 궁전이 있다. 세기의 건축가, 조경사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각종 장식들 덕분에 지금도 조금씩 규모가 커지고 있는 갈리아 왕족들을 위한 거성인 것이다. 이 중심에는 장미 대리석과 푸른 벽돌로 만들어진 왕성 '그랑트로와'가 있다. 그리고 그 곁엔 이자벨 공주의 거처인 연분홍 빛 궁전 '프티트로와'도 있었다.
그랑트로와에서 살고있는 장신의 미남자, 갈리아왕 죠제프는 손님을 앞에 두고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호두나무로 만든 안락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금으로 장식된 훌륭한 응접용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앉아 있는 것은 성 에이지스 32세였다. 두 사람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밝은 햇살을 쬐면서도 상쾌하다고는 말 할수 없는 오오라를 두른 채 마주보고 있었다.
"이거 정말 놀랍군요. 설마 죠제프 님께서 허무의 계승자일 줄이야."
"아니요, 허무의 계승자라고는 해도 내정을 하면 나라가 기울고, 외교에서도 그저 고개를 조아리기 바쁜 무능한 자인지라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하 고 겸양의 말을 내보이는 왕이었지만 그 태도엔 겸양하는 자세가 하나도 드러나지 않았다. 왕보다 지위상에서 앞서는 교황을 앞에 두고 오만하게 의자에 몸을 묻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비토리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미 이 방엔 다름사람이 오지 못하게 엄명이 떨어져 있었다. 책상 위에 놓여진 와인쿨러엔 따지 않은 와인이 허무하게 식어갈 뿐이었다.
"이야기는 대충 사역마인 묘드니트니른에게서 들었습니다. 때문에 서론은 생략해 주시겠습니까?"
"이거 참...사역마 종류까지 간파당해 버리다니, 이거 그녀 이마의 룬에다 낙서라도 해서 표식을 바꿔야 겠군요."
"여성의 미모엔 되도록이면 손을 대지 않는게 좋습니다."
왕의 농담에 교황이 웃고, 뒤이어 왕도 웃는다. 하지만 둘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은 서로를 잡아먹으려는 것 처럼 날카로웠다.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젊은이의 입에서 다음 말이 나왔다.
"성지 탈환에 대해섭니다만, 설마 동생분을 죽이고 즉위했다고 알려진 당신이 이제와서야 신앙에 눈떴다고 하시진 않으시겠지요?"
그 말에 죠제프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러는 너는 진심으로 엘프에게서 성지를 탈환하자고 말하는 거냐? 잠꼬대도 아니고."
왕에게서 형식적인 경어가 사라졌다. 하지만 교황의 입은 미소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진심입니다. 성지를 되찾는것 만이 나의 목표이며, 교황으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흥, 제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허울뿐이란건 이미 알고 있어.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당신이 레콘기스타를 통해 할케기니아를 통일한 후에 무엇을 할 것인가. 그것과 관계가 있지요."
"뭐야, 내가 엘프들과 전쟁이라도 벌이려 한다...그렇게 말할 셈인가?"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죠제프의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감이 드러나고, 한동안 침묵이 응접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죠제프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 웃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속에서 진심으로 드러나는 웃음이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그 나이에 참 대단한데 그래! 맞아, 그럴 생각으로 한 거야. 그런데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레콘기스타를 조종해 트리스테인과 게르마니아를 경쟁시키고, 그 둘이 피폐해진 틈을 타 힘을 온존한 갈리아가 모든것을 집어 삼키고 할케기니아를 평정한다...듣기로는 훌륭한 계획입니다만, 여기서 '그렇담 죠제프님의 야망은 어디로 향하게 되는가.'하는 문제가 남죠. 여기서 로마리아까지 얻게 되면 대만족, 그 뒤에 평화를 만끽하자...라고 하기엔 죠제프 님의 성격과는 맞지 않죠. 그럴거라면 굳이 레콘기스타를 만들필요 없이 그냥 왕가의 피를 각지의 지방 귀족들에게 심어 두는걸로 충분합니다."
그 말에 갈리아 왕은 배꼽을 잡고 포복절도했다. 한바탕 웃은 그는 간신히 호흡을 진정시키곤 와인을 꺼내 코르크 마개를 따곤 단숨에 들이켰다.
후욱, 하고 한숨을 내쉰 뒤에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 알비온에 있는 내 사역마를 만난걸로 거기까지 간파당한건가. 그래 그 말 대로야. 성지따윈 아무래도 좋지만, 엘프와의 전쟁은 재밌을 것 같지 않나?"
"그것때문에 할케기니아를 피로 물들일 셈입니까?"
"그래. 대단하지 않아?"
사과는 커녕 가슴을 펴고 자신의 야망을 드러내는 죠제프.
"뭐, 대단하다면 확실히 대단하지요. '무능왕'이란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들을 방심시켜놓고, 뒤에서 사람들 부려 타국의 형세를 좌지우지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보통 대단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 그리고 그런 나를 이용해 먹으려 드는 네놈도 마찬가지고."
"신앙은 그런 것이니까요."
비토리오는 어떠한 주저도 없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큭큭큭 하는 웃음이 응접실에 울려 펴졌다. 왕은 다른 글래스를 꺼낸 뒤, 와인을 부어 교황 앞에 뒀다.
"그럼 이제 한잔 하는건 어때? 아까도 봤겠지만 독은 없다."
"그럼 사양않고."
교황은 아무 망설임 없이 입가에 와인을 댔다. 그리고 그 입에서 와 하고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거 대단하군요."
"그래, 내 비장의 물건이지. 슬프게도 이제 두번 다시 손에 넣을 수 없지만 말야."
"그거 영광이군요."
왕도 자기 잔에 붉은 액체를 가득 담은뒤 단숨에 들이켰다.
두 사람은 잠시간 와인의 향기로운 향과 맛을 즐겼다. 그리고 먼저 잔을 놓은 왕이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여튼, 서로 본심을 터 놓고 이야기를 한 뒤에 말하게 된건 미안하군. 사실, 아까 계획에 대해선 거의 손을 놓고 있었어."
"왜죠?"
교황은 별달리 놀라는 기색 없이 물었다. 왕은 교황이 놀라지 않았다는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왜긴, 트리스테인을 침공할 수 없기 때문이지."
"엘프와 싸우기 위해 그런 계획까지 꾸민것 치고는 너무 안 어울리는 대답이네요."
죠제프는 콧웃음을 치고는 와인병을 둘 사이에 쿵 하고 놓았다. 왕과 교황의 시선이, 와인 병 안 붉은 액체를 사이에 두고 교차한다.
"설마, 이 와인 타르브산입니까."
"그래. 얼마 전 트리스테인 침공으로 파괴된 그 타르브 와인이야."
"그렇군요. 정말 두번다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이지요."
"포도밭의 절반 이상이 전쟁으로 파괴됐다더군. 필사적으로 종묘를 구해 새로 밭을 꾸민다곤 하지만 지금같은 품질을 되찾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지."
둘 사이에서 요동치던 와인은 차차 파문이 잦아들어 고요함을 되찾고 있었다.
'타르브의 포도밭이 파괴됐다.'
실은 알비온군이 그런게 아닌 어느 부부의 부부싸움 때문이지만 세상 그 누구도 '바람을 핀 남편을 잡기 위해 아내가 포도밭을 작살내 놨다.'고 믿을수 있겠는가. 때문에 이는 알비온 군과의 전투로 소실됐다는 정보가 더 퍼져 있었다. 그리고 그 부부싸움의 여파로 산의 배수로도 엉망진창이 돼 있었고, 살아남은 포도나무도 가지가 부러지고, 잎이 다 날아가 복구되기까지는 몇년이 걸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창고에 남아있던 타르브 와인은 희소가치가 생겨 가격도 폭등하고 있었다.
마을 재건비용은 지금껏 마을에서 모아둔 돈으로도 턱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시에스타가 주운 인공 다이아몬드 티아라, 속칭 '피에 젖은 티아라'를 푸케가 알고있는 장물아비를 통해 호사가에게 판 덕분에 그걸로 어떻게 충당할 순 있었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가 지어지고 양과 프레데리카는 마을에 끝없는 죄책감을 가진 채 타르브를 떠났다...
"...그런데 그 부부싸움이 사실이었던 거야!"
죠제프는 와인을 다시 자신의 잔에 따르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했다.
"동생에겐 딸이 있었거든. 그 조카-이름은 샤를롯이라네-이 지금 트리스테인 마법학원에 유학하고 있어. 그렇게 해서 트리스테인 마법사들의 동향을 감시하고 나에게 소식을 전해 주는거야. 그 조카의 말에 따르면, 트리스테인의 허무의 계승자라는 꼬마애의 사역마는 다른 세계에서 온 남자라고 하더군. 그 남자가 여자가 그리운 나머지 여기서 바람을 피다가 이 세계로 날아들어온 본처에게 들키는 바람에 이세계의 배를 가지고 무차별 포격을 날려 타르브가 박살이 났다고 해. 믿을 수 있겠나? 여자 혼자 조종하는 작은 배가 그 광대한 포도밭을 일순에 파괴한 거야!"
젊은 교황이 픽 웃으며 소감을 말했다.
"말 그대로 천벌이로군요."
그 반응에, 죠제프는 노골적으로 시시하다는 얼굴을 했다.
"뭐야, 이미 알고 있었나."
"타르브 담당 주교에게서 보고가 있었지요. 하지만 너무나 묘한 소문이 있어 재조사를 시켜봤더니 그 묘한 소문이 사실이었다고 하더라구요."
교회의 권력은 여러가지가 있다. 신자에게서 걷는 십일조나 장원에서 걷는 자금력. 신앙으로 유지되는 신의 권위. 그리고 대륙 어느곳에나 교회는 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각종 정보력은 대륙 그 어느 나라도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배는 부부싸움 끝에 파괴됐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 하지만 그것과 같은 배가 수십대 이 세게로 넘어와 있어. 뭔가 문제가 있는건지 사람은 타고있지 않았다고 하지만, 그건 배 자체가 사람 없이 비행할 수 있다는건 사람이 타고 있을 때 보다 더 무서운 사실을 알려 주지."
"고작 평민 두명이 한 나라의 군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겁니까?"
"그래, 소문의 그 배는 단 한개의 포로 산능선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더군. 그리고 속도는 풍룡을 아득히 뛰어넘고 소재도 정체모를 금속. 거기에 인간의 조종이 필요없는 배가 이미 수십대 트리스테인에 있다고 하더군. 샤를롯이 몰래 배에 숨어들어봤는데, 아무리 해도 조종법을 알 수 없다고 하더군. 그 두 부부외에는 그 누가 손을 대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더라고."
"그렇습니까...그 정보는 정말 여러가지 문제를 전해다 주는군요."
교황은 여기에서 겨우 그 능글맞은 미소를 무너트렸다. 임금도 일부러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 정말 중대한 문제지. 우선 그 마녀는 진짜 '허무의 계승자'라는것. 뭐가 어찌됐건 그녀는 실제로 나처럼 사람을 소환했으니 말야. 거기에 노골적으로 교회와 성지 탈환에 반감을 갖고 있어. 그렇기에 군사, 정치적으로 그녀를 제거하는건 불가능하지. 게르마니아와 트리스테인간의 연방체제가 결성돼 그 국력은 지금 갈리아와 대등한 수준이야. 군대를 동원해도 타르브의 그 배가 포격을 날리면 상대 할 수 없지. 그렇다고 그 부부를 죽이는것도 불가능한게, 그걸 이세계의 그놈들 동료가 알게되면 지금 이상으로 이세계의 배가 날아올 태고...뭣보다 그 '양'이라던 사역마, 그녀석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닳아빠진 책략가야. 기껏 진행해 온 내 게임을, 그것도 이국의 사람은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세치 혀로만 망가뜨린 녀석이라고."
"어? 그렇단 말은...트리스테인의 그 신속한 선양 결정이 발리에르 공작의 발상이 아니란 말인지?"
"그래. 샤를롯의 말로는 선양과정을 꾸민것도, 추기경에 의한 기습 작전도 모두 놈이 꾸며낸 것이라더군. 본래 세계에서는 한 나라의 장군이었다는 모양이야."
교황이 다시 한숨을 지었다. 하지만 곧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돌아왓다.
"지금 현재로도 충분히 큰 일 투성이인데...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다보면 슬픔과 불안으로 가슴이 아려 옵니다. 그런데 이세계에서 온 부부가 상당히 발전된 이세계의 물건을, 그것도 차례차레 불러들이고 있어요. 때문에 할케기니아는 엘프 뿐 아니라 이세계의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들과도 싸워야 하는 날이 오게 되겠지요. 거기다 그 마녀가 퍼트리는 '성지는 이미 사라지고 없다.'거나 '오히려 엘프들이 할케기니아를 지키고 있다.'는 그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가고 있어요."
"그래. 완전히 이 세상은 미쳐가고 있어. 아무리 세상 사람들은 호기심이 많은 바보들뿐이라고 해도 그것도 어느 정도가 있는 법이지."
죠제프가 즐겁게 웃었다. 입가를 끌어올려 낮게 억누른 웃음을 계속했다.
"그리고, 빛이 넘치는 땅이라 불리는 빈민촌의 관리인이 왜 이제와서 나를 만나자고 한 건지 모르겠군. 털어놓기 힘든 고민을 들어 줬으니 걱정은 잊어버리고 후세에 베풀어 주라고 말할 셈인가?"
종교도시 로마리아. 성직자들은 이곳을 '빛이 넘치는 땅'이라며 성지에 버금가는 신성한 곳이라 하고 있다. 거리에는 웃음과 풍요로움이 넘치고, 신관들이 경건한 자세로 브리밀 신자들을 지도하고 있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공상일 뿐, 실지로는 각지에서 유입되는 난민들의 집합소인것이 현실이었다. 직업이 없어 밥도 옷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빈곤한 자들이 매일 줄지어 거리 곳곳에 앉아있고, 그 옆을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관들이 불쾌함을 참아가며 사원으로 향하는것이 로마리아의 일상. 그것을 꼬집어 말한 왕의 발언에도 교황은 별 반응 없이 조용하게 대답했다.
"물론 아무 사심없이 온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공통의 적을 갖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온 겁니다."
"흥, 그런거 정도야 이미 알고 있어. 그리고, 그걸 확인했다고 해도 뭘 어쩌자는 건데?"
"이것 때문입니다. 아, 당신에게도 이미 도착해 있겠지요?"
교황은 가슴에서 고급 종이로 된 편지를 꺼냈다. 그 안에는 트리스타니아에서 열리는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 조인식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교황과 죠제프가 밀실회담을 가진 날 해가 막 저문 시간. 갈리아의 군항이 위치한 산 마론은 갈리아 공군/해군의 근거지이다. 바다에 접한 부두와 지상의 철탑엔 갈리아 함대 '양용함대(파이라테랄 플롯테)'가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이 대함대는 할케기니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며, 갈리아가 할케기니아의 최강국임을 자랑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가장 높은 철탑엔 주위 전열함보다 훨씬 큰 갈리아 양용함대 기함인 '샤를 오를레앙'호가 정박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교황전용선인 '성 마르코'호가 있었다. 그리고 성 마르코호의 방에서 청년과 소년이 불온한 분위기를 풍기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서 세명의 연대장이 이쪽에 응했습니다. 로마리아의 이름을 걸지 않고도 이정도의 수인데 교황님의 지지를 얻게 된다면 다른 기사단과 함대, 일반병사들도 동조해 줄 겁니다. 아니, 전 병력이 호응해 줄 겁니다!"
흥분한 채로 말하는 것은 20살 전후의 젊은 기사. 단정히 정돈한 수염이 잘 어울리는 미남이었다.
"동부 장미기사단은 반대하지 않았나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앉아있던 중성적인 분위기의 미소년이 물었다. 그 소년의 왼눈은 다갈색, 오른눈은 푸른색을 하고 있었다.
"이 밧소 카스렐모르를 비롯해 동부 장미기사던 전원은 찬탈자를 엄벌할 것이라며 거사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가늘고 여린 입술에서 탄식이 나왔다. 그리고 부드러운 동작으로 인사를 했다.
"참으로 든든한 소식이군요. 이 줄리오 체자레, 교황성하께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카스텔모르님의 협력에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군요."
그 말에 카스텔모르가 당황해하며 소년에게 예를 갖추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 얼굴을 들어 주세요. 그 찬탈자의 목을 쳐 샤를롯 님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정한 왕으로 받아 들일수만 있다면, 성지회복에 있어서도 저희는 물심양면으로 도와 드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머리를 올린다. 달의 눈(오드아이)를 지난 소년은 흰 사슴가죽장갑을 낀 손으로 청년의 손을 잡고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럼 거사 계획의 개요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스텔모르는 고개를 내밀어 체자레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귀울렸다.
"그 조인식엔 마리안느, 알브레히트 3세, 크롬웰, 조제프...할케기니아의 모든 세속통치자들이 모여 있게 됩니다. 그리고 마리안느와 알브레히트 3세가 조약에 도장을 찍으면, 거기에 교황성하께서 시조의 이름으로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의 승인을 선언하는게 일정입니다."
"하지만 실지로는 트리스테인의 반 연방주의자가 회장을 습격, 전체를 말살하고 교황성하는 이를 사도 토벌로 인정 한다는 것이지요?"
기사의 말에 화려한 금발이 흔들렸다.
"그렇습니다. 당신 덕분에 갈리아 왕이 엘프놈들과 통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연방은 '허무'를 사칭하는 마녀에 홀려 그녀를 섬기는 사교의 나라임이 밝혀졌지요. 크롬웰은 뇌물수수같은 수수한 위반을 저질렀습니다만, 뭐 찬탈자이니 털다보면 먼지가 나오겠지요."
"그렇다면 정치, 종교적인 처분은 쥴리오님께 맡기겠습니다. 갈리아 국내의 의사 통일은 맡겨 주십시요. 이왕 하는거, 회장 습격은 죠제프의 경호 기사를 시키는게 어떻겠습니까? 아니면 제가 거기에 숨어들어서..."
"아니요. 당신은 갈리아 국내의 여론 통합과 정보 획득에 힘써 주세요. 회장을 습격하는건 쉽지만, 그 이후 각국을 다스리는건 쉬운일이 아니니까요."
각국 요인들을 암살하고 각 나라의 통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카스텔모르는 조금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그건 간단합니다. 알비온은 웨일즈 황태자, 트리스테인은 앙리에타 공주, 갈리아는 샤를롯 공주님, 게르마니아는...그래, 체르프스트 주변에 누구를 앉히면 되겠군요. 앙리에타 공주는 아직 폐위됐단 소식없었고, 게르마니아는 다른 삼국의 내정이 안정되면 각자 자기살길 찾아서 찢어지지 않겠습니까. 별 문제 없겠는데요?"
카스텔모르의 영문을 모르겠다는 질문에, 속눈썹이 긴 미소년은 고개를 흔들었다.
"제일 문제되는건 왕실이 아닌 그 소문의 마녀입니다."
동부 장미기사단의 기사는 그 말에 납득했다.
"그렇군요. 자칭 '허무의 계승자'라죠. 진위를 떠나서 무서운 마력을 지닌 자라는건 확실한 것 같더군요. 거기다 그 부하인 이세계의 군인이라던가, 정체불명의 군선이라던가 무시못할 무력을 가진건 맞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평민, 배에서 내릴때를 노리면 될 겁니다. 거기다 아무리 마법이 강하다 해도 그 정신력엔 한계가 있을 테구요."
기사의 구상에 소년은 더욱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그런게 아닙니다. 마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결국 그녀도 아직 풋풋한 소녀에 불과합니다.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추기경을 몰아내고 트리스테인의 실권을 잡기위해 그 아비인 발리에르 공작에게 이용당한 것 뿐입니다. 그 부하도 할케기니아의 사정에 밝진 않으며, 시간이 지나면 분명 시조 브리밀님의 가르침과 사랑을 깨닿게 될 테지요."
거기까지 말 하고 체자레는 씩 웃으며 카스텔모르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카스텔모르는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아 차렸다.
"그렇군요...성지 탈환에 그들의 힘이 필요하단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들의 힘이 있으면 성지탈환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겁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설득'을 할 겁니다. 교황성하께서 직접 시조의 가르침을 가르쳐 주는거죠. 그렇게 사교의 잘못된 방식을 버리고 진정한 신앙에 눈뜨게 되면 분명 우리의 손을 잡아 줄 겁니다. 다만 이전에 퍼진 유언비어는 좀 문제가 되겠군요. 국민들의 눈을 멀게 만드는 잘못된 가르침이 더 퍼지지 않게 좀 더 힘을 쓰셔야 겠습니다."
그 말에 카스텔모르는 납득했다. 팔짱을 끼고 몇변이고 음,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도 갈리아의 최중심에 소속된 기사, 마법학원으로 날아오는 수수께끼의 군선에 대해선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배가 편대를 짜 포격을 가한다면 엘프따윈 순식간에 세상에서 존재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잘못을 깨닫고 사교에서 벗어나 참된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가리지 않고 기뻐해야 할 일이다. 써먹을 수 있는 사람에게 죄를 물어 죽이는 것 보단 말을 잘 듣도록 길들이는것이 바로 '구제'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소년이 '설득'이라고 말할때 소년이 무슨 표졍을 지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램프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선 그 누구라도 이를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프티트로와', 갈리아의 공주가 거처하는 연분홍빛의 소궁전. 키스텔모르와 줄리오 체자레가 음모를 꾸미고 있을 무렵, 타바사를 태운 실피드가 그 궁전의 정원에 내려앉았다. 타마사는 성큼성큼 걸어 공주의 방문앞에 서고, 방 앞에서 창으로 문을 가로막던 가고일 상이 창을 들었다. 타바사는 천장에서 내려오는 두꺼운 커튼을 넘겨 방 안에 들어갔다.
타바사는 손에 든 편지를 펼쳐 묵묵히 읽기 시작했다. 무표정인 채로 시선이 몇번이고 좌우로 왕복하고, 몇번이고 안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방구석에 선 시녀들은 타바사...아니. 샤를롯이 처음 짓는 반응에 대체 편지에 뭐가 쓰여있는지 궁금해졌다.
"몇번씩 읽는다 해도 내용이 바뀌진 않아."
타바사의 시선이 절망에 빠지기 시작할 무렵, 방주인이 그렇게 대꾸해 왔다. 의자에 앉은 17세 가량의 소녀. 푸른 눈, 실크처렴 가늘고 부드러운 머리칼, 크고 아름다운 왕관. 이는 마법 선진국 갈리아의 공주인 증거임을 나타냈지만, 그 공주는 손에 든 잔에 담긴 와인을 한번에 들이키고는 혀로 입술을 닦으며 자신이 고귀함과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는것을 드러냈다.
"명령, 틀림없는거지?"
타바사가 묻는다. 거기에 공주는 어이없다는 듯 타바사를 노려봤다.
"뭐어~? 야, 인형 7호...너 북화기사단 단장인 이 이자벨라의 명령을 거부하겠다...그렇게 이해해도 되지?"
인형 7호라고 불린 타바사에게 이자벨라의 따가운 시선이 꽂힌다. 하지만 타바사의 무감정한 얼굴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는 이자벨라도 마찬가지였다. 잠시간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다. 아니, 이자벨라가 일방적으로 노려보는게 좀 더 정확하리라.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무감정한 표정이 바뀌지는 않았다. 결국 이자벨라 쪽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말해두지만, 이건 아버지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야!"
그 말에 타바사의 눈이 살짝 흔들리고, 다시 한번 편지를 읽었다.
"정말이지?"
"그렇다니까! 그런걸 가지고 거짓말을 할 리가 없잖아. 아니면 뭐야, 이건 듣기 싫다 뭐 그런거야?"
타바사는 고개를 들어 북화기사단장을 바라봤다. 그렇게 이자벨라를 잠시 바라보고는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공주의 지팡이에 타바사가 지팡이를 맞댔다.
"흥, 알았으면 됐어. 북화기사(슈발리에 드 노르파테르)7호인 네게 임무를 주겠어. 어서 빨리 처리하고 돌아와."
타바사는 방을 뒤로 하고 실피드에 올라타 밤하늘을 향애 날아올랐다.
"뀨, 뀨이! 믿을수 없어요! 있을수 없어요! 그런 명령,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는거에요, 절대로 저~얼대로 하면 안되요 언니!"
목적지로 날아가면서, 타바사에게 임무내용을 들은 실피드는 안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떴다. 일단 타바사가 말한 곳으로 날아가곤 있지만 필사적으로 타바사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호소했다. 하지만 타바사의 무표정한 얼굴은 바뀌지 않았다.
"명령이야."
그 한마디 뿐이었다. 하지만 실피드는 납득할 수 없었다. 큰 입에서 침을 흩뿌리면서 항의를 계속했다.
"뀨이! 맨알 명령이니까 해야되. 이건 안돼, 돼, 안돼! 가끔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하라구요!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라구요 뀨이!!"
하지만 타바사의 대답은 똑같았다.
"명령이니까."
거기에 실피드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하아...이용당하고 있다는게 뻔히 보이는 상황인데...언니는 이대로 실컷 부려먹히고 멋대로 죽으라는 거군요...짧은 기간동안 정들었는데...'
그런 사역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타바사는 실피드를 재촉해 한시바삐 목적지인 알비온을 향해 날아갔다.
니이도 월, 티와스 주, 다에구 요일.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 발리에르 저택의 사람들이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의무실의 침대서 카틀레아가 자고 있었다. 침대 옆에서 시에스타가 캐노피에 병을 몇개 매달곤 얇은 튜브를 병 입구에 찔러넣었다. 병에는 '아미노프리드 VSOP'과 '솔리터T800호'같은 약품명과 주의사항 같은것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시에스타 주변에 집사 제롬을 비롯한 몇명의 시녀, 하인들이 흥미롭다는 눈으로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손에 든 고무줄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 준 뒤, 카틀레아의 팔에 묶었다.
"그리고 이렇게 팔을 묶어 혈관을 노출시킵니다. 그 다음 약을 가득 채운 관을 혈관에 찔러 넣으면 됩니다. 이 관에 공기가 들어가면 절대 안되니까 주의해 주세요. 카틀레아 아가씨는 몸이 허약하셔서 혈관이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을거에요. 그럴땐 물수건 같은걸로 팔을 따뜻하게 해 준 다음에 하시면 되요. 바늘을 넣을 곳을 확인하면 여기 알코올로 닦은 뒤에 바늘을 조금씩 찔러 넣으시면 되요. 바늘이 혈관에 들어가면 바늘을 통해 피가 역류하는게 보일텐데 이때 바늘을 고정해 주세요. 그리고 이 바퀴를 돌려 약을 조금씩 흘려 넣으면 되요. 바늘이 제대로 들어가 있으면 역류하던 피가 다시 몸속으로 돌아갈 테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늘을 넣은곳이 밝갛게 부어 오르게 돼요. 가끔 혈관벽에 바들이 막혀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조금 바늘을 움직여 확인해 보셔야 해요. 약이 몸속에 들어갈때 조심해야하는게, 너무 빨리 들어가면 심장이 놀라 맥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반대로 너무 느리면 피가 굳어 약이 들어가지 않아요."
그렇게 시에스타는 타르브에서 배운 의학지식을 설명하면서 직접 카틀레아의 팔에 바늘을 넣어 링겔 점적법을 가르친다. 시연이 끝나자 침대에서 일어난 시에스타는 방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엔 한가득 쌓인 상자가 있었고, 그 안엔 링겔 도구와 식염수 팩이 가득들어있었다.
"이상입니다. 그럼 여러분들도 저기 연슴도구를 이용해서 서로에게 연습해 보세요.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시구요."
싱긋 하고 미소를 지으며 강의를 마친 시에스타. 하지만 '서로에게 링겔을 연습해 보라는'말에 시종들은 얼굴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누구라도 사람에게 바늘을 대는것은 무서운 것이다. 찌르는 사람도, 찔리는 사람도 무서워서 몸이 떨리고 그러다보면 실패하게 된다. 그래서 곳곳에 '먼저 시작해, 난 무서워서 무리'같은 말이 소곤소곤 들려온다.
"괜찬하요. 제가 연습상대가 되 드릴테니, 여러분들은 사양말고 연습해 주세요."
하고 미소를 짓는것은 링겔을 맞고 있는 카틀레아였다. 그런 상냥한 모습에 사람들은 용기를 내 연습을 시작한다. 시에스타는 그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아 반대에요. 바늘은 몸쪽을 향해야 해요.'라거나 '잘하셨어요. 그 다음은 이렇게 튜브로 고리를 만들고 피부에 테이프를...'하면서 강의를 계속한다.
똑똑.
의무실의 문을 노크하고 루이즈가 얼굴을 내밀었다. 그 뒤엔 양, 프레데리카, 키르케도 있었다.
"저기, 언니는 좀 어때?"
"아,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적당하게 떨어지고 있어요."
하고 활기차게 시에스타가 대답했다. 덧붙여서 '떨어지고 있다'는건 '챔버'안에 약이 원활하게 내려오고 있다는 것. '점적'이라는 이름도 여기에서 비롯됐다. 이를 통해 약에 포함된 기포가 제거되고, 시간당 주입량을 측정할 수 있다. 기계를 이용하면 더 정확하고 안전하게 할 수 있겠지만 그건 발리에르 가 사람들은 쓸 수가 없다. 때문에 옛날부터 내려오는 방법을 가르치게 된 것이다. 침대에 누워있던 카틀레아가 조금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루이즈에게 손을 흔들었다.
"여러분 또 다시 학원으로 돌아야 하는군요. 하지만 언제라도 좋으니 놀러 오세요. 루이즈도 다른 분들께 폐를 끼치면 안돼."
"그 그런짓 안해!"
그 말에 뾰로퉁해진 루이즈를 양이 진정시킨다. 루이즈는 정신을 차리고 시에스타에게 눈을 돌린다.
"그럼 우린 먼저 학원으로 갈 테니 치이 언니를 잘 부탁해."
"물론이죠. 집안의 여러분들께 가르쳐주는게 끝나면 저도 돌아갈게요."
"부탁해. 그땐 양이 '드라트'로 마중갈거야."
그렇게 루이즈는 하인들이 필사적인 얼굴로 링겔을 연습하는 방을 뒤로 하고, 두대의 소형정에 올라타 학원으로 향했다. 덧붙여서, 몸치인 양이지만 비행정 운전은 추락하지 않고 능숙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그날 정오, 트리스타니아의 타니아리쥬 로열.
본래대로라면 성당에서 11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야 하지만, 지금 성당엔 있어야 할 종이 없었다. 그리고 원기둥이 늘어서 신전의 분위기를 풍기는 훌륭한 극장으로 잘 차려입은 신사숙녀들이 계단을 올라 들어가고 있었다. 공연은 '너를 위해 종을 울리다." 상관의 미움을 사 국립 극장으로 좌천된 젊은 장교가 주인공. 처음엔 극장의 잡무에 혹사당해 낙담하지만, 아름다운 여배우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각종 준비를 담당하는 직원들, 그리고 극단원들과의 교류를 통해 극단의 훌륭함을 알게 알게 되고, 그러한 극단을 지키기 위해 홀로 도시를 향해 몰려오는 적을 향해 칼을 빼 드는 결말...
"자주 볼 수 있는 스토리지만 제법 인기가 있지요. 뭣보다 여배우들의 노래나 라스트가 대호평이지요. 여배우들은 사실 귀족의 지위를 박탈달한 마술사들로, 장교는 그녀들과 함께 비밀부대를 편성해 도시를 지켜내고...제 취향은 아니지만 이곳 여자들에게 제법 먹히는 모양이에요."
상인풍의 남자가 옆의 귀족에게 이야기 한다.
"아니, 이전에 했던 '트리스타니아의 휴일'이 워낙 악평속에 끝나다 보니 경영진들이 이제서야 보통 극단을 데려온 것 뿐이야."
초로의 귀족이 상인을 향해 웃는다. 아마도 은발 귀족은 농담을 한 것 같지만 그는 '그렇게 서투른 배우들이었는데 당연한 거지.'하고 납득했다. 이후로도 두 사람의 속삭임은 계속됐다.
"...이상이 조인식에서의 경비 배치다. 상공의 용기사대는..."
"교황성하 직속 성가대원을 통해 주십시요. 달의 눈을 하고 있으니..."
두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것은, 연방 조인식 습격의 실행계획. 할케기니아를 뒤흔들 음모가 마치 잡담인것 마냥 두사람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종막 무렵 대강의 정보 교환이 끝나고, 상인 풍의 남자는 귀족남자에게 가방을 건넨다. 귀족이 가방을 확인하니 그 안에는 금화가 가득 차 있었다.
"알비온의 그분은 정말 호탕하시군요. 그러면서 신심도 깊으시고, 정말이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지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에 제가 부끄럽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 마녀에게 홀리지 않고 진실된 믿음을 유지하시는 것이야 말로 대단하십니다."
"후후, 믿음뿐만이 아닙니다. 그 은백의 배를 조종하는 양이란 평민, 그리고 그에게 조종당하는 공작...이대로라면 멸망의 불길은 트리스테인만으로 끝나지 않을겁니다. 이는 할케기니아의 위기이고, 그걸 막기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야지요."
상인 풍의 남자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앙리에타 공주님도 조국이 타국의 침략을 받고 멸망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계십니다. 공주님을 게르마니아에 팔아넘기려돈 마자리니도 추방됐고, 이제 진정한 왕을 모실때가 됐지요. 애초에 양이란 녀석도 그 푸케란 도눅년의 기둥서방이라지 않습니까. 그런 도둑의 무리는 하루빨리 성에서 쫓아내야 이 나라가 안정될 겁니다."
그 말에 귀족이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자리니가 물러나고, 그 자리는 발리에르 공작이 차지했다. 공작의 정치적 센스와 공작부인의 전설적인 무공, 그리고 루이즈가 지는 '허무'의 카리스마에 의해, 마리앙느의 막료진은 연방주의자가 차지했다. 거기에 이국에서 온 수수께끼의 배를 부리는 양. 추기경들에게 보여준 지략으로 보아 공작이 그간 숨겨왔던 참모라는 소문이 있었다. 물론 빠르게 세를 늘려나가는 그들에게 반발하는 자들과, 격변하는 정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수구파들도 존재했다. 뭣보다, 양과 공작은 알비온에게 씻을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바 있다. 때문에 알비온은 롱빌의 정체를 공개했다. 그보다 조금 전에 롱빌은 모습을 감추었고, 양과 공작, 마리안느는 롱빌의 혐의에 대해 불문에 처한다고 선언. 그 이후로도 트리스테인/게르마니아 내부의 불만분자와 신심 높은 자들에게 레콘기스타가 은밀한 접촉을 진행하고 있었다. 반연방파에게서 '공작은 매국노.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국군인에게 조종당해 나라를 팔았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양은 엘프 혹은 동방의 첩자로, 할케기니아 침공을 위해 파견된 자.'라는 그럴듯한 소문도 난무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허무'의 마년 어떻습니까?"
귀족이 순간 고개를 갸웃하더니
"으음...실은 수개월 전부터 행방불명입니다. 마법학원이 여름방락을 맞이하면서 배를 타고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하지만 정황을 보아 조인식에는 분명 얼굴을 내밀것 같습니다."
"흠...그렇다면 계획엔 큰 차질에 없겠군요."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커튼콜을 받은 배우들이 무대에 나란히 서 관중을 향해 깊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두 사람도 박수를 치며 극장을 나선다.
초로의 귀족이 극장앞에 늘어선 마차에 올라타고, 공손히 고개를 숙인 마부가 물었다.
"리슈몽님, 어디로 갈 까요?"
"일단 고등 법원으로 돌아가자. 행사 준비를 위해 경비 배치를 조금 바꿔야 해."
마차는 방향을 돌려 성으로 향했다.
같은날 밤, 트리스테인 마법학원.
신학기가 시작되고, 조인식 날도 내일로 다가와 있었다. 때문에 학생들도 모두 학원에 돌아와 있었다. 루이즈의 방에선 조인식을 위해 장만한 드레스와, 신학기때 입을 교복을 거울로 계속 확인해 보는 루이즈가 있었다. 같은 옷을 몇번이고 입어보며 확인하는 루이즈, 그리고 그 옆에 서 그녀를 돕는 프레데리카.
"음...역시 핑크쪽이 내 머리랑 어울리지 않을까?"
"그렇네...목걸이는 여기 루비쪽이 어울릴거 같아."
"음...핑크랑 루비가 어울릴까? 그것보단 사파이어가..."
하며 두 사람은 드레스와 악세사리를 고르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나는지도 모른 채 두사람은 거울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그 동안 양은 기숙사 탑을 나와 홀로 멍하니 나와 있었다.
"여기나 저기나 여자는 옷을 고르는데 시간이 걸리네."
"그러게 말이다."
그런 양 앞에 작은 그림자가 섰다.
"어허, 타바사 씨, 안녕하세요."
양 앞에 선 타바사는 끄덕,하고 고개를 살짝 낮췄다.
"손님."
"손님이라니, 나한테요?"
"당신이랑, 프레디리카랑, 루이즈."
타바사는 변함없이 무표정인 채 학원 근처의 숲을 가리켰다.
밤중의 숲은 어둡고 섬뜩한 분위기를 뗬다. 양은 손전등으로 발 밑을 비춰 보지만 그걸로 숲의 어둠은 가시지 않았다.
"또 넘어지면 안돼, 양."
"이번엔 안 넘어져."
하고 델프링거에게 대답하던 양은 그대로 나무 등걸에 걸려 멋지게 굴러 넘어졌다.
"나 참...말 하자 마자 그러기냐..."
양은 황급히 바지를 털고 루이즈의 뒤를 따라갔다. 타바사는 숲속, 실피드의 둥지로 셋을 데려 왔다. 거기엔 손님같은 인물도, 실피드도 없었다.
"저기 타바사...손님이라고 했는데 누구야?"
루이즈가 불안스럽게 물었지만 타바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그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 저건...분명 타바사씨의 사역마인."
프레데리카의 말에 양도 위를 봤다. 거기엔 날개를 펴고 내려오는 실피드와, 거기 올라탄 후드를 눌러 쓴 사람이 타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허무'의 계승자, 그리고 이국의 군인 여러분."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숲에 울려퍼지고, 실피드의 등에서 가볍게 내려 섰다. 루이즈가 손전등을 그녀에게 비췄지만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누구시죠? 후드를 벗고 이름을 대세요."
"어머, 이거 실례."
하고 여자는 후드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양이 비춘 그녀의 이마엔 룬 문자가 쓰여 있었다.
"당신은...!?"
"안녕, 내 이름은 묘드니트니른. 너와 마찬가지로 허무의 사역마야. 양 웬리."
그녀는 양을 향에 요염한 미소를 지어올렸다. 그 손가락엔, 어딘가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물빛의 보석이 끼워져 있었다.
크롬웰이 끼고 있던 안드바리의 반지였다.
제 29화 설득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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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성의 게이 떳다~!!!
장난이고, 이제 제로제독도 결말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만...아무리 봐도 황급히 정리한 것 같은 엔딩이라 찝찝합니다. 이 작품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인 금발 미청년 황제폐하가 매사 마무리 지어버리니까.
제로제독과는 관련 없지만, 두주 전에 저에게 번역의 의지를 되살려 준 '뚜르!'란 작품을 번역하시는 마마챠리님이 블로그를 차리셨습니다. 남경창/도쿄자전거/내맘자/노리린과는 또 다른 재미를 가진 뚜르! 를 보고 싶으신 분은 http://ijustwannaxxxyou.tistory.com/(4~6화). 1~3화는 아직 블로그에 올리시지 않으셨더라구요. 1~3화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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