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중의 성지.
천 년 전엔 훌륭한 오아시스 도시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거대한 분화구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분화구
중심에 위치한 소환게이트는 지금도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다. 크기는 사람 하나가 겨우 비집고 나올만한 정도로, 10km밖의
둔덕에서는 작은 광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둔덕엔 엘프의 각 지파에서 파견된 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
가운데 귀가 짧은 자, 엘프들은 '야만인'이라 부르는 할케기니아 사람들이 섞여 있었고, 그들은 모두 분화구 중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금발의 '야만인'여성이 지루하단 표정으로 회중시계를 꺼내 보고는 혀를 찼다.
"나 참,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야?"
곁에 있던 엘프가 또 다른 '야만인'여성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게…….예상대로라면 오늘이 확실한데…….이대로라면 날이 밝겠어."
"그러네요. 너무 늦어요."
그렇게 말하고 '야만인'여성은 오른팔을 얼굴로 향해들었다. 그 손목엔 디지털시계가 빛을 내고 있었다. 아까의 엘프도 시계를 들여다보곤
"이 정도로 늦을 줄이야. 뭔가 문제가 생겼다면 연락이 왔을 텐데?"
하며 가슴에서 손바닥 크기의 기계를 꺼내 덮개를 열고 스위치를 눌렀다.
"…….별 다른 연락은 없군. 일단 기다릴 수밖에 없겠어."
대부분의 '야만인'들은 엘프들과 평소와 별 다를 바 없이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엔 엘프에게 다가가지 않으려는 자들도 있었다.
"하아…….그 분 말씀대로 성지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그것도 엘프들의 소행이 아닌 시조의 힘이 폭주한 결과라니……."
"그래서, 우리말을 못 믿겠단 거야?"
옆에서 '야만인'여자가 공포에 질려있는 남자를 노려본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움츠러들면서
"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전 항상 그분과 아가씨의 가호를 받아 왔습니다. 그 술집에서 만난 이후로 저 같은 못난 것이 감히 품고
있던 '폐하를 보고 싶다.'는 소원까지 이뤄 주셨는걸요. 그렇지만 한때 시조의 가르침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던 몸으로서 이걸
보니 도통 무엇이 맞는 것인지, 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하고 머리를 움켜쥔다. 옆의 여자는 남자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답했다.
"뭘 어떻게 하라 강요하진 않겠어. 그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면 그걸로 충분해. 이제부턴 각자 스스로 모든 걸 헤쳐 나가면 안 되니까."
그렇게 말하고 여자는 성지의 중앙을 계속 바라봤다.
그렇게 여러 이야기가 오가던 중에,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마른 '야만인'남자가 소환 게이트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기 봐! 이제 시작된 것 같아!!"
그
말에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도 모두 중앙을 바라봤다. 분명 아까 전까진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크기였던 게이트가 멀리서
봐도 점점 커져 간다는 게 보였다. 많은 엘프들과 '야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게이트에서 이전에 수많은 정찰기와 무인기를 내뱉을
때봐 비슷하거나 더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번엔 이전과 달리 대지와 바람의 정령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휘몰아치는 황야에서, 빛나는 문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제 30화 부조리극, 막을 내리다.
조인식날 아침.
온갖 구름이 떠있는 하늘 아래, 샹 드 마르스 연병장은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성이 아닌 연병장이 조인식장으로 선정된 이유는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연방 설립 선언서'의 서명을 볼 수 있도록 위함이었다. 지금 트리스타니아 전체는 트리스테인·게르마니아 양군이 엄중한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었고, 특히 식장은 공중에 용기사대, 지상에 마법위사대 그리폰·만티코어·히포그리프 부대가 방문객들의 감시를 계속하고 있었다.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병장위에 마련된 자리는 이미 귀족들이 모두 차지한 상태였다. 그들은 트리스테인·게르마니아 뿐만 아닌 갈리아, 로마리아, 심지어 알비온에서 초청받아 온 귀족들이었다. 물론 무대 바로 앞에서부터 뒤로 몇째줄 까지는 각국의 요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다른 자리와는 달리 화려하게 장식된 의자가 늘어서 있고, 거기엔 왕족에 버금가는 화려한 망토나 드레스를 입은 신사숙녀가 앉아 있었다. 연병장 밖으론 조인식을 보기위해 모였지만 식장에 들어갈 수 없는 평민들이 모여 있었다. 조금이라도 무대가 보이는 높은 나무나 지붕 같은 곳에도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있었다.
연병장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무대가 설치돼 있었다. 흰 천으로 덮인 무대 위에는 몇 개의 호화로운 의자가, 크진 않지만 제법 훌륭한 책상을 중심으로 정렬돼 있었다. 무대 뒤편엔 거대한 트리스테인·게르마니아의 깃발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무대의 의자도 이미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트리스테인 여왕 마리앙느와 재상 발리에르 공작, 게르마니아 황제 알브레히트 3세와 카이저수염이 매력적인 하르덴베르크 후작, 알비온 황제 크롬웰과 비서 셰필드, 갈리아의 죠제프왕과 공주 이자벨이었다. 각 왕국의 경호 진은 단상 아래에서 눈에 띄지 않게 주변에 대한, 그리고 서로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식장 여기저기서 귀족들이 조인식에 대한 궁금증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저기, 재상이나 장군이 있는 건 그렇다 쳐도 알비온이나 갈리아는 왜 비서와 공주가 있는 거지?"
"뭐…….무대에서의 수행원을 선정하는 거야 누구든 크게 관계가 없으니까."
"사교계 데뷔인걸까?"
"서명의 증인이란 건 그냥 핑계일 테지. 이런 자리는 갈리아 공주를 각국 인사들에게 소개하기는 딱이니 말이야."
각국의 통치자들과 마찬가지로 왕관을 쓰고, 앞머리를 뒤로 넘겨 반질반질한 이마를 드러낸 이자벨은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마냥 조용히 조셉의 옆에 서 있었다.
다른 쪽에서도 속삭임이 들여온다. 하지만 그 대상은 단상이 아닌, 귀족석의 일부를 차지한 트리스테인 마법학교 학생들의 자리였다.
"저기봐, 저기 저애야."
"아아, 저게 그 유명한 '허무'의 루이즈? 발리에르 가의."
"그리고 그 좌우에 앉아있는게 수수께끼의 평민 사역마 부부야. 남편 쪽은 갈리아를 능가하는 군사국가의 장군이라는 모양이야. 위사대에서의 소문에 의하면 한가닥 하는 책략가라는데."
"그 소문은 나도 들었어. 발리에르 가의 전속참모이자 정체모를 이국의 배를 부린다고 했었지? 최근엔 주인과 함께 트리스테인을 잠시 떠났다고 들었었는데 벌써 돌아와 있었네……."
그들이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가리킨 곳엔 루이즈와 동맹의 군복을 입은 양 부부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위로 오스만과 기토, 콜베르를 비롯한 교사들과 기슈, 몽모랑시, 말리코르느 같은 학생들이 앉아 역사에 남을 조인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잡담들이 오가는 와중에 마리앙느와 알브레히트 3세의 연설이 시작됐다. 나긋나긋하고 상냥한 여왕과, 야심으로 똘똘 뭉친 마흔 살의 황제가 각자 기나긴 연설을 했다. 권위와 의례로 가득한 두 사람의 연설이 끝나고 조인식의 메인인 조약 서명이 거행되자, 상공에서 갑옷차림으로 경호하는 용기사가 대열을 가다듬고, 주위의 기사들도 정렬, 그러면서도 주변에 대한 감시는 게을리 하지 않았다.
나팔소리와 함께 어두운 보라색의 신관 복을 입고 원통형 모자를 쓴 로마리아 교황 성 에이지스 32세가 신관 몇을 이끌고 무대로 올라간다. 식장에 있던 사람들은 성장(聖杖, 성스러운 지팡이)을 든 아름다운 그 모습에 고개를 숙이고, 식장 밖에서도 기도소리가 들려왔다. 비토리오는 단상에 올라 관객석을 둘러봤다. 식장 내에 있는 작은 분홍머리의 소녀, 그리고 그 좌우에 이방인을 발견하자 단상으로 몸을 돌려 갈리아 왕도 눈을 맞췄다. 죠제프는 씩 웃고는 후드로 얼굴을 가린 셰필드에게 시선을 보냈다. 진짜 주인의 시선에 묘드니트니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교황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단상에 오른 교황은 조인서가 펼쳐진 책상 앞에 서고 양 손을 펼쳤다.
"마리앙느 여왕과 알브레히트 3세는 여기 오라."
젊은 성자의 목소리에 이끌리듯, 두 사람은 우아하게 일어나 책상 좌우로 선다. 두 사람은 처음엔 교황에게, 그 다음은 단상에, 마지막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귀족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식장 안은 일순 '삭…….'하고 정적에 휩싸였다. 교황은 시선을 잠시 내려 조인서의 내용을 확인한 뒤 이를 소리 높여 낭독했다.
"…….지금 여기, 트리스테인·게르마니아 양국은 과거의 앙금을 버리고 서로의 손을 잡아 새 시대를 만들기 위해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을 성립함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알브레히트 3세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맹세합니다. "
마리앙느도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교황도 수긍하고 조인서를 가리키며
"양자 이론이 없다면 이 문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말했다. 두 사람이 지팡이를 꺼내 자신의 이름을 적고 서명하는 모습을 교황은 지그시 바라봤다. 수많은 관중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세상에 눈 있는 자들은 모두 새로운 국가 설립의 순간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둘의 서명이 끝나고, 각자 책상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자 교황은 이를 확인하고 관중석으로 향했다. 한손에 성장을 쥔 채로 양손을 넓게 펼치고 찬송가를 노래하는 듯 한 맑은 목소리로
"지금 여기에, 트리스테인의 여왕 마리앙느와 게르마니아 황제 알브레히트 3세는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 성립 선언서에 이름을 적었다. 따라서 짐은……."
하고 말 하더니 몸을 돌려 책상 옆에 서 있는 둘을 향해 섰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성장을 내밀고는
"그대들에게 사교(邪敎)를 믿는 국가를 설립하려는 '배교의 죄'를 물어, 화형에 처한다!"
순간 비토리오와 셰필드, 죠제프는 자리를 박차고 단상 아래로 뛰어 내렸다. 경비기사들을 포함해 무대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뽑아 단상을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단상은 없었다.
불과 아까까지만 해도 각국의 수장들이 있었던 단상은 붉은 불길만이 일렁일 뿐이었다.
상공엔 한 마리 화룡이 단상 위에서 춤추듯 날고 있었다. 그리고 크게 벌린 입에서 그 붉은 비늘과 같은 화염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불길은 순식간에 단상에 남아있던 속세의 통치자들과 그 심부름꾼을 숯으로 만들었다. 상공을 경비하던 용기사대에서 한명이 대열을 이탈해 단상을 급습한 것이었다. 그리고 단상에서 뛰어 내린 셋은 교황의 수행원인 신관들이 만든 얼음벽에 의해 불꽃의 열로부터 보호받고 있었다.
눈앞에서 일어난 갑작스런 사태에 사람들은 움직일 수 없었다. 각국에서 온 경호기사들도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빼 들긴 했지만 뭘 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그간 겪어온 피를 토할 듯 한 지독한 훈련을 거쳐 온 기사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자벨린' 등의 수/빙속성 주문을 영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잠시간의 공백을 교황은 놓치지 않고, 그 맑고 고운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외쳤다.
"전 브리밀 교도들에게 이르노니!"
세속 통치자들을 능가하는 권위를 지닌 교황의 말, 그리고 아까의 '화형선고'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그 태도를 보고 객석의 귀족 뿐 아니라 경호기사들 까지도 영창을 중단하고 교황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타오르는 불길을 배경으로 한 교황에게 시선을 뺏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교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식장을 우아하게 훑어보았다. 그리고 그 옆으로 사교(邪敎)에 빠진 통치자들을 말살한 화룡기사가 섰다. 매우 성미가 거칠고 까다로운 탓에 자신이 인정한 자만을 태운다는 화룡은 얌전히 교황에게 머리를 숙이고 당연하다는 듯 날개를 낮춰 그 등을 교황에게 내어줬다. 교황은 그 화룡에 올라탔고, 전설이나 동화속의 거룩한 기사와 같은 분위기에 경호기사들의 마법은, 영창이 끝나고도 그 주인을 구하기 위해 발해지지 않고 하릴없이 화룡만을 향하고 있었다.
젊은 교황이 소리 높여 외쳤다.
"트리스테인의 여왕 마리앙느와 제정 게르마니아의 황제 알브레히트 3세. 그들은 발리에르 공작이 날조한 '성지 소실'이나 '엘프에 의한 세계수호'라는 얼토당토않은, 시조에 대한 불충한 발언에 홀려 사교(邪敎)의 국가를 수립하려 했도다! 거기에 더해 시조 브리밀에 거역하는 삿된 믿음을 전 할케기니아 사람에게 퍼트리려 했다! 이 땅을 어둠에 파묻기 위해서 말이다!"
식장에 절망스런 탄식이 울려 퍼졌다. 교황의 규탄에 트리스테인·게르마니아 양국의 귀족들에게 동요가 퍼진다.
"그리고 올리버 크롬웰! 그는 교회에 속한 자로서 시조의 가르침을 지켜야 할 주교의 직위에 있으면서도 시조께서 내린 신성한 왕권을 탐해 찬탈을 저질렀다!"
이에 알비온 귀족들 사이에서도 당혹감이 퍼져나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성지 탈환이라는 기치 아래 교황이 새로운 황제를 인정하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교황의 승인을 받지도 않고 주교라는 자가 멋대로 시조의 왕권을 거역한 것은 큰 죄였다. 이에 그는 이 꼴을 당한 것이다.
"따라서 짐은 교황 성 에이지스 32세의 이름으로 이 자리에 종교 재판을 거행했노라! 편결은 화형! 또한 지금 여기서 재판 및 형의 집행이 끝났음을 선언한다!"
교황의 일방적인 통보에 귀족들은 할 말을 잃었다. 숨을 쉬러 나온 물고기 마냥 그저 입만 뻐금거릴 뿐, 아무도 거기서 감히 소리를 내는 자는 없었다.
"발리에르 공작의 날조를 비롯한 일련의 사건에 대한 증인도 이미 있다. 그대여, 지금 여기에 모인 모든 브리밀 교도들에게 알려주시게. 이번 조인식이 사리사욕에 사로잡혀 시조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은 악귀들의 모임이었다는 것을!"
하고 교황은 높이 쳐든 성장을 관객석으로 향했다. 그 지팡이는 핑크색 머리의 소녀, 루이즈를 가리켰고, 그녀는 눈앞에서 아버지가 숯검정 돼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교황을 향해서 상큼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대, 발리에르가의 삼녀, 루이즈 프랑소와즈 르 블랑 드 라 발리에르여, 그대의 아비 발리에르 공작에게 협박당해 비열한 음모에 이용된 것이 사실인가?"
사람들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며 웅성거렸고, 지목당한 루이즈와 곁의 양 부부가 담담히 일어섰다. 셋은 학원 학생들 사이를 빠져나와 단상이었던 곳을 향해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려 했다. 하지만 또 다시 일어난 갑작스런 사태에 모두가 다시 말을 잃었다. 심지어 교황과 신관들마저 눈을 크게 뜨고 경악했다.
루이즈의 목이 허공에 날고, 양의 가슴에서 지팡이가 솟아 나왔으며, 프레데리카는 어깻죽지에서부터 허리까지 갈라져 땅으로 미끄러졌던 것이다.
말리코르느의 지팡이가 루이즈의 목을 날리고, 기슈의 지팡이가 양의 심장을 관통하고, 또 다른 동급생 남자가 프레데리카의 앞을 가로막고 그대로 내리 그은 것이었다.
"돼…됐어! 빌리, 기슈! 성공했다고!! 우리, 우리가 성공한 거야!!!"
말리코르느가 감동에 차 떨리는 주먹으로 지팡이를 들었다. 빌리라 불린 남학생이 말리코르느를 껴안았다.
"그래! 역사에 남는 건 우리들이야! 트리스테인을 노리는 침략자들을, 귀족을 무시하던 분수를 모르는 평민들을 벌한건 바로 우리야!!"
기슈는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내린 뒤, 망토 속에서 원통을 꺼냈다.
"공주 전하, 부디 받아 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성공했습니다! 공주전하를 해하고 트리스테인을 이국에 팔아넘기려던 악당들을 저희가 해치웠습니다!! 중앙 광장과 생 레미 대성당에서 공주전하께 맹세한 것을 비로소 완수했습니다!! 공주전하의 원수를 갚을 것을, 그리고 양 그놈이 실추시킨 전하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약속을!! 그날, 그때부터 저희는 용도 쓰러트리는 총을 지닌 자들을 말살하기 위해 산에서 수행을 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하고 기슈는 원통을 둘러 싼 천을 벗겨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 안에는 웬 고깃덩이가 액체에 담겨 떠다니고 있었다.
중앙광장에서 시에스타의 저격으로 토막 난 앙리에타의 오른팔이었다.
셋은 환희의 외침을 외치며 서로의 어깨를 부여잡고 빙빙 돌고 있었고, 귀족들은 계속되는 사건들에 어안이 벙벙해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칫!!"
죠제프가 혀를 찼다.
"모처럼 반지로 세뇌를 했건만, 꼬맹이 놈들이 쓸데없는 짓을!!"
화룡 옆에서 묘드니트니른도 저주를 내뱉었다. 그 말에 교황이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옆에 앉은 용기사와 눈길을 마주한다. 그는 바로 교황의 의도를 이해하고 화룡을 조종해 묘드니트니른의 목에 칼을 휘둘렀다.
그녀의 목은 머리를 덮고 있던 후드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뒤이어 용기사는 검을 돌려 죠제프의 가슴을 꿰뚫었다.
"네, 네놈……!!"
"세뇌가 필요 없어졌다면 당신도 필요 없어졌습니다. 무능왕."
죠제프의 눈앞에는 투구의 틈새로 용기사의 눈이 보였다. 선명한 달의 눈(오드아이)미소 짓고 있었다.
"그래, 나는 한없이 쓸모없는 무능한 왕이다!!"
가슴을 검으로 관통당한 죠제프가 웃는 얼굴로 쾌활한 단말마를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죠제프 몸은 흔적도 없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뭣이!"
달의 눈을 지닌 용기사가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인형!!"
지상에는 작은 인형이 몇 개 널려 있었다. 쥴리오가 황급히 묘드니트니륜이 있던 곳을 보니 거기엔 머리 부분만 남은 인형이 널브러져 있었다. 식장 저편, 루이즈 일행이 습격당한 근처에서도 소년들의 비명이 퍼졌다.
"으아악!! 뭐, 뭐야 이거어어!!
"이...이건 인형이야! 아르뷔(소형 마법인형)라고!"
"바꿔치기..? 젠장, 당했다!!"
왁작왁작한 목소리와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것이었다. 이번 연방 설립의 주역들이 암살된 놀라움에서, 그들이 습격을 예상하고 도주했다는데 대한 놀라움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들의 시선은 난자당한 세 개의 작은 인형에 쏠려 있었다.
「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참 장관이군!」
어디선가 죠제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보게, 교황! 나는 종교재판의 피고인이 아닐 텐데 왜 나까지 죽였어야 했는지 설명해 주실까!!」
목소리가 어디서 나는지 보려고 사람들은 주위를 살폈지만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오히려 목소리는 연병장 전체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들렸다. 그 목소리는 식장 바깥의 평민들에게조차 들리고 있었다.
가장 앞자리에 앉아있던 초로의 귀족 리슈몽이 자기가 앉은 의자 아래서 소리가 나는걸 깨닫고 의자를 들쳐 봤다.
"이건...뭐지? 목소리를 전하는 마법 도구...?!?!"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건 마법도구가 아닌 작고 검은 물체뿐이었다.
「왜? 말 못하겠나??」
"으악!!"
손가락으로 집어올린 물체에서 소리가 나자 리슈몽이 놀라 나자빠졌다.
「넌 교황이다. 브리밀인가 뭔가 하는 양반의 대변자지 않나. 자 어서 그 신의 말을 해 보라고. 왜 날 죽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해보란 말이다!」
고등법원장 주위에 앉아있던 귀족들도 죠제프의 말을 전달하는 검은 물체를 알아차렸지만, 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엔 그들이 모르는 문자로 Minispeaker라 새겨져 있었다.
교황이 타고 있는 화룡이 목을 돌려 다 타고 없어진 무대를 바라봤다. 이에 교황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아직 당신에 대한 판결을 아직 내리지 않았군요."
이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상황에서, 분명 처단했었을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비토리오는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이봐, 사형을 집행하고 나서 판결을 내려는 건가?」
조인식장 바깥, 나무에 올라 식장을 바라보던 소년은, 자기가 올라탄 줄기에 붙은 작고 검은 물체에서 소리가 난다는 걸 알아챘다.
「분명 옛날부터 사형집행을 받아도 사형수가 죽지 않으면 무죄방면이었겠지? 그렇다면 나도 무죄로군. 신께서 내린 자비를 저버리지 말게나.」
식장에서 멀리 떨어진 '매혹의 요정"의 점장 스카론도 가게 처마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머나, 이게 오이겐의 할아버님께서 말씀하신 '스피커'란 거구나. 양씨가 붙여둔 걸까?"
장신의 스카론은 쭉 하고 팔을 뻗어 마이크로 스피커를 뜯어 유심히 바라 봤다. 그리고 주위를 차근차근 둘러봤다.
"…….이거 엄청나게 많이도 달아놨네."
죠제프의 목소리는 도심 곳곳에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쥴리오는 씩 하고 입가를 끌어 올린 뒤 무대 뒤로 칼을 들이댔다.
"이제 장난은 그만 하시죠. 자, 피고인은 증언대로."
불똥과 연기가 피어오르는 무대에서 그림자가 일어섰다.
「나 참…….역시 신의 법은 엄중하단건가. 뭐, 시키는 대로 나가주지.」
하고 타다 남은 잔해가 날카로운 발톱에 짓밟혔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마법인형이었다. 노랗게 빛나는 눈, 흉측한 이빨을 드러내는 입, 날카로운 발톱, 긴 채찍 같은 꼬리. 거기 있던 것은 거대한 가고일 이었다. 어딘가서 나타난 거대한 석상의 머리위에 죠제프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고, 그 곁에는 후드를 벗어 미모를 드러낸 묘드니트니른이 서 있었다. 죠제프는 능글능글한 얼굴로 할케기니아의 최고 권위자인 교황 성 에이지스 32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 원하는 대로 나와 줬다. 그럼 검사(檢士)이자 판사이신 교황성하? 나에 대한 재판을 시작해 보자고!"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범죄자에게서 재판을 요청받은 교황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판결문을 읊었다.
"갈리아 왕 죠제프. 그대가 엘프들과 통하고 있다는 동장미기사단원의 증언을 이미 얻었다. 또한 그들에게서 기술을 공여 받고 그 대가로 여러 편의를 봐 주고 있었던 기록 또한 손에 얻었다. 고로 그대는 앞전의 자들과 마찬가지로 화형을 선고한다!"
하고 교황은 성장을 하늘로 치켜들었다가 죠제프를 향해 내리치고, 화염의 폭풍이 일었다. 화룡의 브레스, 하지만 교황이 탄 화룡은 입을 열지 않았다. 화염구는 공중에서 쏟아져 내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죠제프와 묘드니트니룬이 타고 있던 가고일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상공을 선회하고 있던 용기사들이 급강하 해 왔다. 등 뒤에 태운 용기사들의 명령을 무시한 채로...아니, 이미 일부는 조종자 없이 날고 있었다. 바위도 녹이는 화룡의 브레스를 하나도 아닌 수십 발을 맞게 된 대지엔 남은 것 없이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없었다. 죠제프에게 칼을 겨누고 있던 쥴리오의 오른쪽 수갑(手甲)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끝났다."
달의 눈에 승리의 빛이 비치고 있었다.
"어이구야...이거 무진장 뜨겁군! 이봐 빈달브, 좀 적당 적당히는 할 수 없냐?"
"뭣...!?"
교황이 처음으로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다. 화룡들을 조종하던 빈달브도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식장의 다른 사람들도 작열하는 무대를 바라봤다. 거기엔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언덕이 있었다. 언덕의 표면은 화염에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땅에서 솟구친 흙과 바위가 용암으로 변한 땅거죽을 땅속으로 퍼 내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언덕이 스르륵 가라앉고 그 안엔 아까처럼 다리를 꼰 죠제프가 있었다. 그 뒤엔 묘드니트니른이 주인을 향해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아 뜨거워라. 아까는 진짜 죽을 뻔 했네."
옷의 가슴팍을 풀어 헤치고 펄럭이면서 갈리아 왕이 중얼거렸다. 그리곤 교황과 줄리오를 내려다보면서
"그래, 너도 나나 루이즈와 같은 '허무의 사용자'인건가? 모든 짐승을 조종한다는 빈달브의 힘도 대단하군."
왕의 시선은 줄리오의 오른손에 향해 있었다. 교황은 '허무의 사용자'라는 말을 부정하지 않고 죠제프를 노려보고 있었다. 갈리아 입에서 튀어나온 '허무'란 말은 트리스타니아 전역에 울려 퍼지고, 식장에는 몇 번짼지 모를 신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교황은 루이즈를 '허무를 사칭한 가짜'라고 단언했지만 갈리아왕은 교황도, 루이즈도, 자신도 모두 '허무의 사용자라고 말한 것이다.
교황의 머리 위로 화룡의 무리가 선회하고 발밑의 화룡도 얌전히 교황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엘프와 대등한 무서운 힘의 상징인 용이 하나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교황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은 그 누가 봐도 기적이었지만, 그런 교황의 기적을 비웃으면서 그 공격을 피하고 있는 죠제프는 과연 무엇이라 불러야 좋을까. 정말로 '허무의 사용자'일까, 아니면 엘프의 내통자인걸까. 사람들의 눈은 서로를 노려보면서 이단 심문을 하고 있는 교황과 갈리아 왕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달의 눈을 지닌 소년이 입을 열고 방울과 같이 맑은 목소리를 냈다.
"그 흙의 벽...선주마법입니까. 엘프와 통하고 있다는 데에 한층 더 의심이 가는군요."
흥, 하고 왕은 소년의 힐난을 비웃었다.
"그거 말이다만, 나도 증인을 불러 놨지. 어이, 교황. 증언대에 올려도 상관없겠지?"
"물론입니다. 피고는 자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할 증인을 부를 권리가 있지요."
교황도 아까의 동요는 간데없고, 오히려 잔잔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가고일을 덮고 있던 흙 언덕이 가라앉고, 그 발밑에 아까까진 없던 몇 명이 서 있었다. 선두엔 밝은 갈색의 예복을 입고 날개장식이 달린 모자를 쓰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금발의 남성이 서 있었고 그 뒤로 머리를 가릴 만큼 큰 모자를 쓴 여성과 헐렁한 옷으로 몸을 숨긴 자, 그리고 녹색 옷을 입은 소년 등이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로마리아의 교황. 그리고 할케기니아의 귀족 여러분. 내 이름은 비다샤르. 사하라에 살고 있는 엘프 '네프티스'지파의 일원이며 평의회의 의원이기도 합니다. '위대한 의지'가 이끌어 준대로 오늘의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는 비다샤르. 그의 긴 귀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뒤이어 금발 여성도 모자를 벗고 엘프의 상징인 긴 귀를 드러냈다. 헐렁한 옷을 입고 있던 자는 옆에 선 소년의 도움을 받아 겉옷을 벗었고, 그 속에 숨어 있던 건 등에 돋아난 큰 날개를 달고, 긴 황갈색의 머리칼이 아름다운 아인족(亞人族) 날개인간이었다.
"아...안녕하세요, 여러분...저는 갈리아 엔기하임 마을에서 인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날개인간인 아이샤입니다..."
이번엔 갑자기 나타난 날개에 시선이 집중됐다. 옆에 선 소년도 조금씩 어깨를 떨면서 작은 목소리를 쥐어 짜 냈지만, 그 작은 목소리도 마이크를 통해 전 도시에 울려 퍼졌다.
"저, 저기...음....귀족 여러분...아, 아녀, 안녕하에요..."
소년은 부들부들 떨면서 고개를 숙이고, 곁의 날개인간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나, 나는, 아니. 저는 엔기하임 마을의 촌장의 아들인 요, 요, 요시아입니다. 아, 아내인 아이샤와 같이 살고 있어요. 우리 임금님이신 죠제프님께서 인간과 사이좋게 지내는 아인족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시어셔서..."
남편의 서툰 말을 아내가 받았다.
"저희 마을은 죠제프님이 파견해 주신 기사님들 덕분에 인간과 날개인간의 구분 없이 다들 사이좋게 지내고 있습니다. 때문에 날개인간인 저와 인간인 남편은 결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은혜에 보답하고자 여기 엘프 분들과 함께 이 땅의 정령과 계약을 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선주마법'이라 부르는 이 '정령의 힘'을 통해 저기 계시는 우리 임금님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정령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말하고 아이샤는 자기가 보답하겠다 말하던 남자에게 팔을 뻗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요정과 같은 미녀에게 불린 죠제프는 호쾌하게 한바탕 웃었다.
"자, 말하는 건 다 들었겠지, 교황. 증인들은 이렇게 증언했다. 내가 엘프를 포함한 다양한 아인족들과 손을 잡고, 선주마법을 익힌 훌륭한 배교자라고 말이다!"
왕의 뒤에서 부채를 부치고 있던 묘드니트니른이 말을 끊었다.
"죠제프님, 지금 증언은 저희에게 불리한 것이 아닌지?"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이거 실수했네, 역시 나는 화형에 처하게 되는 건가? 하하하하하!"
하고 죠제프는 한껏 더 웃기 시작했고, 뱃속 깊숙히서 터져 나오는 폭소는 트리스타니아를 뒤흔들 정도였다.
교황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고, 얼어붙은 시선만이 왕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당신은 자신이 유죄임을 인정하고 화형 판결을 요구했다고 봐도 되겠군요. 설마 이제 와서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큭큭큭큭…….그럴 리가. 오히려 내가 화형이라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않나, 교황?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것을 하겠다는 그 자신감은 높이 사 주고 싶군그래. 잠꼬대도 정도껏 해야지 과하면 안 된다고."
광소 하는 죠제프를 노려다 보면서 교황은 다시 성장을 치켜 올렸고, 줄리오의 오른손도 다시 한 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가능합니다. 선주마법이 아무리 대단하다 하더라고 당신은 형을 피할 수 없어요. 이번엔 상공의 화룡 뿐 아니라 이 식장에 있는 환수 모두가 시조의 말씀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말과 동시에 마법위사대가 부리고 있던 만티코어, 그리폰, 히포그리프 모두가 죠제프를 향해 이를 드러내고 그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기사들이 갑자기 말을 듣지 않게 된 환수들을 제어해 보려 했지만 전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식장을 경비하던 환수 모두가 무대 쪽으로 뛰어들어 죠제프를 포위했지만 죠제프와 묘드니트니른은 유유자적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아니, 완전히 틀렸어."
왕은 갑자기 손을 휘척휘척 내젓고 교황의 실수를 지적했다.
"뭐가 말이죠?"
비토리오는 성장을 겨눈 채로 침착하게 물었다.
"형벌이란 건 죄가 있어야만 내릴 수 있는 거다. 따라서 죄가 아닌 죄를 묻는 형벌은 있을 수가 없는 거지. 그런 건 집행 되서도, 선고 되서도 안 되는 거야."
"호오? 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걸까요…….꼭 자신의 배교가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정답이야. 엘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슨 죄가 되지?"
당당하게 선언한 왕은 엘프 남성에게 시선을 향했다. 갑자기 지목받은 비다샤르는 조금 곤란하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봐 죠제프, 농담에도 정도가 있다. 조금은 말을 가려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엘프에게 경칭을 생략당한 갈리아 왕이었지만 이를 지적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그저 웃기만 할 뿐.
슛, 하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줄리오의 검이 죠제프의 목에 들이밀어졌다.
"장난은 그만하라고 몇 번을 말해! 대체 당신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성지 탈환을 방해하는 시조의 원수
인 엘프와 손을 잡는 것이 배교가 아니라니, 교회를 조롱하는 것도 정도가 있습니다!"
죠제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지만 곧이어 무릎을 탁 치고는
"아 그런가? 미안, 농담 좀 해봤을 뿐인데 진담으로 받아 들일 줄이야…….그렇담 이제 슬슬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도 좋겠지? 사실 말이다, 나는……."
엇차, 하고 왕이 가고일 머리에서 일어나고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쉰 뒤 목청 높여 선언했다.
"연방 찬성파다!!!"
교황도, 줄리오도, 식장 내의 모든 사람들도 무슨 말이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긴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 조인식이었지.'하고 생각이 미쳤다. 뭐,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하더라도 죠제프의 발언이 무슨 관련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지만. 그런 주위의 의문에도 아랑곳 않고 갈리아 왕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여기서 선언하겠다! 나와 같은 '허무의 계승자'인 루이즈 프랑소와즈 르 블랑 드 라 발리에르의 말에 따라, 이 땅에 평화를 불러 오겠다고!!! '성지'따위 허울만 좋고 천년도 전에 사라진 환상에서 깨어나 갈리아 왕으로서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합과 함께, 그리고 엘프나 날개인간 등 모든 지혜 있는 자들과 함께 새로운 시대를 살기위한 터전을 세울 것을 여기에 선언하겠다!!
그 자신감과 위엄에 찬 발언은 미니스피커를 통해 트리스타니아 전역에 울려 퍼졌다.
「감사합니다, 갈리아 왕 죠제프 1세여. 우리는 당신의 선언에 동참하겠습니다.」
「음,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의 초대 황제 알브레히트 3세로서 갈리아 왕의 연방 가입을 승인하고, 평화를 원하는 그 모습에 예를 표하지. 다 함께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도록 노력해 보지 않겠나.」
어디선가 마리앙느의 자상한 목소리와 알브레히트의 강건한 목소리가 나왔고, 그와 동시에 어디선가 날카로운 소리가 퍼져왔다. 사람들이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자, 저 멀리 하늘에서 작은 점 두개가 보였다. 그 점은 점차로 커져가고, 소리 또한 점점 크고 높아져 갔다. 순식간에 식장 상공으로 날아든 쇳덩어리는 화룡의 무리 위를 선회했다. 바로 은하제국의 강습강하정이었다.
2기의 강하정은 검은 배면을 할케기니아 사람들에게 자랑하면서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착륙을 시작하고, 주변을 날아다니는 화룡에 아랑곳 않고 갈리아 왕과 묘드니트니른이 있는 거대한 석상 옆으로 내려앉았다.
제로의 사역마를 끝까지 못본 사람이긴 한데요...아이샤란 사람, 등장인물 맞아요?
그리고 제 기억으론 죠제프나 비트리오나 둘다 나쁜놈이었는데 왜 죠제프가 착하게 나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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