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이여!"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 라인하르트의 목소리가 한층 더 크게 울려퍼졌다. "은하제국이 할케기니아에 침략을 꾀하고 있었다면 이미 오래전에 할케기니아는 짐의 군세에 유린당해 그대들은 지금의 번영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짐이 평화를 원하는 가장 명백한 증거이다!!" 그 말에 교황은 아연실색한 채 멍하니 서서 아무 대답도 할수 없었다. 줄리오도 칼을 쥔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
그대들의 그 어떤 마법도, 어떤 대포도 짐의 함에 상처 하나 입힐 수 없다. 애시당초 닿지도 않을 뿐더러, 설령 닿을 위치에
온다해도 마법과 대포를 쓰기도 전에 이쪽의 포격이 끝나있을 터. 못 믿겠다면 지금 여기서 짐이 손을 들었다 내리는 사이에 그곳의
모든 존재를 지워줄 수도 있다만?" 라인하르트는 죠제프를 바라보며 팔을 들어 올렸다. 이에 갈리아 왕과 묘드니트니룬이 악마 동상을 본뜬 마법인형에서 내리고, 마법인형은 땅을 울리며 주위에 아무도 없는 연병장 구석에 주저앉았다.
...거기엔 빛이 있었다.
순
간, 마법인형은 사라지고, 그것이 앉아있던 땅도 사라져 반경 수십메일 정도의 큰 구덩이만 남아있었다. 하지만 회장의 사람들은
그것이 미사일 공격에 의한 것이란걸 알 수 없었다. 다만 머리위의 전함에서 뭔가 막대모양의 무언가가 날아왔고, 그것이 마법인형에
닿은 순간 빛과 함께 모든것이 사라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앙리에타 망명직후 은둔해 마법의 수행만을 해오던 탓에 진상이고 뭐고
알 턱이 없었던 기슈·말리코르느·빌리라도 그것은 알 수 있었다. 깨진 아르뷔를 쥐고 허탈히 땅에 주저앉는 기슈 일행의 어깨를
두드리는 노인의 손이 있었다. 오스만이었다. "자네들을 비난하지는 않겠네. 지금은 가만히 그들의 말을 들어보지." 세 사람은 미동도 하지 않고 멍청히 그를 바라만 보았다. "
좀 더 말하자만, 여기 모인 모든 함정은 무인기다. 그대들이 알기 쉽게 말하자면 가고일과 같은 것이다. 교황이여, 그대의
'허무'의 마법이 얼만큼 기적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설령 그대가 이 천여 함대를 없앤다 하더라도 짐에게는 모기가 찌른것보다고
아프지 않다. 그저 새로이 만대의 무인 함대를 보내면 되니까. 또 짐의 함대를 부수게 되면 그 파편에 그대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게
될 테니 조심하게."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을 하는 라인하르트, 이미 비토리오는 성장(聖杖)을 손에서 놓친지 오래였다.
두려움에 떠는 화룡의 등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더 이상 교황으로서의 위엄을 내세울 수 없었다. 고개를 숙이고, 앙다문
입술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고, 머리에서 떨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모자에 대해선 본인은 물론 그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야말로 할케기니아의 패배를, 교황과 브리밀 교의 권위 실추를 나타내는 모습이었다. 회장에 모인 모두는 용에 필적하는
공포의 대상인 엘프와, 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외계의 군단이 성지를 가로막고 있는 사실과, 그들의 변덕으로 교회는 물론 모든것이
일순에 사라질 수도, 그리고 엘프들과의 평화를 받아 들여야만 그것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을 통감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죠제프의 드높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어설 기력도 없는 교황을 향해 만면에 미소를 띈 채 말을 걸었다. "뭐, 그렇게 된 거다! 자세한 이야기는 차차 가르쳐 주겠고...간단히 말해 오늘의 이 조인식은 모두 연극이었던 거야!" 그렇게 말하고 성큼성큼 교황이 탄 화룡으로 다가가는 죠제프. 갈리아 왕은 얼굴을 들지 못하는 교황에게 실로 즐겁다는듯 계속 말을 걸었다. "이봐이봐, 네가 지금 느끼는 절망에 대해서는 나도 안타깝게 여기고 있어. 인생을 바쳐 뱉아낸 거짓말이 들통나고, 힘으로 진실을 막아보려 해도 압도적인 차이로 이도어도 안되는 상황이지? 것도 할케기니아 전 귀족들에게 모두 까발려졌으니 이제 더이상 네 입지도, 권위도, 권력도 아무것도 없어!" 교황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죠제프는 화룡위로 올라타 교황의 근처까지 다가가 팔장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갔다. "아참참, 좋은것 하나 가르쳐 주지. 저기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낸 라인하르트를 비롯해 은하제국의 인간은 모두 마법을 쓸 수 없댄다. 나도 듣고는 놀랐지. 그 젊은이의 나라엔 마법사도, 마법도 없다는군. 때문에 따로 부하를 시켜 할케기니아에 떠도는 은하제국의 물건들을 조사해 보니 아무 마법반응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엘프들도 그 어떤 정령을 느낄 수 없었다눈군." 그 말에 라인하르트와 양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지만 교황은 이를 납득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우리 머리위에 날아다니는 신의 군세과 같은 저 대함대도 모두 마법을 못쓰는 평민들이 만든 가고일이란 말이다. 브리밀이 우리에게 준 계통마법도, 선주마법도 없이 이동하고 있다고. 평민들의 힘이 계통마법을 웃돌고 있단 말이다! 시조가 할케기니아에 내려준 축복이자 수수께끼라 불리는 '허무'의 계통과 그 사역마인 모드니트니룬이 만든 거대한 가고일조차 저들의 폭탄하나로 산산조각이 났단 말이지!!" 죠제프가 턱으로 슬적 연병장의 구석을 가리킨곳은 마법인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구덩이었다. 그리고 거기 사용된 것은 대함미사일이 아닌, 핵탄두대신 아득히 과거에나 쓰였던 재래식 탄두였다. 왕은 일부러 어깨를 으쓱 하곤 "나 뿐만 아니라 마리앙느 여왕이나 알브레히트도, 엘프들 조차도 어쩔 수 없는 물건이야. 어쨌든 엘프들과 은하제국의 사람들이 말한 것 가운데 거짓은 없단걸 다시 상기시켜 주지. 시조가 탈환을 요구한 성지는 풀 한포기 나지않는 황무지, 한가운데 있는 소환의 문은 양의 '드라트'를 비롯해 은하제국의 군함만 튀어나올 뿐, 거기다 그 전투선 하나하나가 할케기니아의 전력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서는 상황에서 웃는 얼굴로 '평화'를 원하고 있으니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할 지는 이제 짐작이 가겠지?" 그 말에 할케기니아의 여왕과 황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보고 왕은 일부러 교황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하지만 교황, 안심해도 좋아. 사건의 책임은 너한텐 없으니까. 그래, 넌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어! 교회가 잘못되 있던것은 네 잘못이 아냐. 너보다 더 이전에 있던 사람들의 잘못이지. 계통마법이 우리를 육천년간 이끌어 온 것은 사실이니까. 우리가 그동안 계통마법을 통해 얻은 혜택은 잘못되지 않았어, 조금의 실수가 있었을 뿐 브리밀교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으니까." 그 말에 교황이 비로소 고개를 돌려 죠제프를 보았다. 모든것을 잃은 청년의 눈에 비친것은 미소를 띄며 자신을 위로하는 푸른 머리의 장년이었다. "그래, 그 말은 교회가 앞으로도 할케기니아를 지도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는 거지! 바로 교황 자네가, 모든 브리밀 교도를 이끄는 위치에 있다는건 변하지 않았어. 은하제국은 우리들과 평화롭게 지내자고 했다. 즉 네 지위도, 교회의 존재도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어떤가, 교황성하! 이제까지 벌여온 성지 탈환을 단념하기만 한다면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지킬 수 있어! 지금까지 해 왔던 대로 할케기니아의 귀족과 평민에게 시조의 가르침을..."
퍽!
타격음이 울려 퍼졌다. 죠제프의 말은 얼굴에 날아든 주먹으로 끊겼다. 하지만 주먹을 내지른건 줄리오가 아니었다. 줄리오가 손에서 반쯤 떨어진 칼을 다시 꼬나쥐자마자 무능왕의 사역마가 그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샤, 비다샤르를 비롯한 엘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갈리아 왕을 지키지 않았다. 화룡의 브레스로부터 그를 지켰는데 불구하고, 청년의 주먹은 막지 않았던 것이다. 아인종들은 교황 수행원들과 신관들이 수작을 부리지 않게 주변을 지켜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양과 프레데리카도, 은하제국의 함대도 아무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당연한 일인 양. 그저 그들은 바라 보고만 있었다. 로마리아 교황 성 에이지스 32세가 갈리아 왕을 때리는 것을, 그저 재미없는 연극인것 마냥. 하지만 이런 것 조차 눈치채지 못할만큼 비트리오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몸 속 깊은 곳에서 치솟는 증오와 분노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전부...전부 네놈의 연극이었던 거냐...?"
청초한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얻어맞고 땅에 굴러떨어진 왕은 입가에 한줄기 피를 흘리면서도 웃고있었다. "그래. 전부 내 짓이다." "이놈....!!!!" 그 말을 교황은 믿을 수 없었다. 엘프는 물론, 은하제국이란 이계의 존재마저 갈리아 왕의 지휘에 따랐던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갈리아 왕의 말은 진실이다." 라인하르트가 죠제프를 거들었다. "그것이, 갈리아 왕이 우리에게 협력하는 조건이었다. 엘프들과의 합의에 따라, 갈리와왕으로서 그리고 '허무'의 계승자로서 갈리아는 은하제국과 평화 협정을 맺는다. 그 대신 오늘 모든 진행을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것이 그가 내세운 조건이었지." 라인하르트의 말에 비다샤르를 비롯한 엘프들이 동의했다. "우리들도 갈리아 왕의 요청은 당황스러웠다. 무엇때문에 이런 싸구려 연극에 말을 맞춰야 하는지 몰랏기 때문이지. 하지만 갈리아 왕은 전면 협력을 약속했고, 우리와 양이 제시한 '불살'이란 조건을 받아들였다. 때문에 우리는 죠제프의 연극에 동참하였고 오늘 아무것도 죽지 않고 끝을 낼 수 있었다." 퍽!!
또 다시 타격음이 들렸다. 이제 얼굴에 살의를 띈 교황이 죠제프의 배를 걷어 찬 것이었다. "그말은...그 말은! 네놈은 모두에게 나를 욕보이기 위해 이따위 짓을 벌였다는 거냐!!!" "끄...끄윽...이, 이제야....알아...차린거...." "비열한 찬탈자좀!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교황의 자리마저 넘보고 있던거야!!!" 죠제프는 배를 움켜쥐며 겨우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은채 일어섰고, 고통에 가득 차 얼굴을 한껏 찌푸려져 있었지만 입꼬리는 들려있었다. 오히려 아까보다도 더 기쁨에 찬 모습이었다.
"크크크크....그럴리가...난 교황따위엔 관심이 없어. 그저 지금 이순간을 위한 것이었지..." "이 순간...? 내개 망신을 주는게 무슨... 왜냐? 대체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는거냐??" "넌 아무것도 안해도 돼. 넌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이 연극을 준비한 거지." 비틀거리며 죠제프가 일어서고 트리스타니아, 아니 할케기니아 대륙에 울릴듯한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너에게 얻어맞기 위해서다!!!" 죠제프는 말했다. 교황이 자신을 때리기 위해 이번 음모를 꾸몄다고. 하지만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주먹을 날린 교황도, 죠제프를 지키지 않도록 정령에게 부탁한 아이샤와 비다샤르도, 모니터 너머로 사건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라인하르트도 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드라트 2기가 비로소 강하정 옆에 착륙해 루이즈 일행을 지상에 내려 보냈다. 그들도, 그저 죠제프의 말을 가만히 들을 뿐이었다.
죠제프는 숨을 가다듬고 조용히 물었다. "교황, 넌 '허무'의 힘이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있는지 잘 알고있군." 그 질문에 교황이 눈이 커졌다. 하지만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몰랐던 거냐, 아니만 말할 수 없는거냐? 뭐 어느쪽이건 내가 대신 말해주지. 그것은 어둠이다." 어둠. 그 말을 입에 담은 죠제프의 얼굴엔 어둠이 떠 있는것 같았다. 기분 탓일지는 몰라도, 그 어조엔 확실히 증오가 깃들어 있었다. "분노, 증오, 질투, 절망...... 존재하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이 '허무'의 근원이지. 거기에 대해선 같은 '허무'의 계승자인 나나 루이즈가 보장한다. 어둠이 마음을 만날때 허무의 힘은 늘어난다. 정신력이 모여 위력을 올리게 되지! 하! 자애로 가득한 브리밀의 축복이라 불리는 '허무'의 근간이 '어둠'이라니 정말이지 웃음이 멈추질 않는군 그래!!" 그 말에 루이즈가 입을 다물고 수긍하지만, 그녀의 얼굴에 혐오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양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도 어둠에 물든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거대한 힘이 폭주하는 것을 막기위해 흔히 봉인이란걸 걸지. 때문에 '허무'에도 봉인이 걸려 있었다. 바로 시조의 보물, 땅·불·바람·물을 상징하는 4개의 반지지. 그 반지와 '허무'의 마법이 만날때 그 봉인은 풀리게 되지...하지만 이 봉인은 또 다른 사실을 숨기고 있지. 바로 '허무'를 쓰면 쓸 수록 그 마음은 어둠에 물든다는 것을!!" 죠제프의 말은 그 마음속에 깃든 어둠이, 자신을 태우는 증오의 불길이 느껴졌다. "옛날, 나는 어떤 마법도 쓸 수 없었다. 물론 내가 '허무'의 계통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지. 궁중의 모두가, 심지어 부모마저 나를 바보라고 불렀다. 그에 비해 동생 샤를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모두가 동생이 왕이되길 희망했고, 녀석의 재능은 누구보다 뛰어났다. 다섯살때 하늘을 날고, 일곱살에 불을 제 손마냥 다루며 열살에 은을 연성해내고, 열 두살에 물의 근본을 이해했지. 내가 할 수 없는 모든것을 샤를은 손쉽게 해치웠지." 동생에 대한 기억을 꺼내는 죠제프.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증오가 아닌 후회와 질투가 섞인 말투였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그리운듯, 동시에 부러움과 분함이 혼재된채 말을 이어갔다.
"아니, 마법뿐만이 아니었어. 샤를은 정말 똑똑했다구. 나와 호각으로 체스를 둘 수 있는 건 녀석뿐이었어. 녀석이 없어지면서 내 체스 상대는 나 자신밖에 없게 됐지. 자신을 상대로 두는 체스는 정말이지...정말로 지루했다! 샤를은 똑똑한데다 상냥했어. 가신과 부모가 날 바보라 불러도, 녀석은 항상 '형님은 아직 능력을 개화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형님은 곧 위대한 사람이 도리겁니다.'라며 날 위해 일부러 실패해 준 적도 있었어...녀석은 정말 착했어..." 갑자기 죠제프의 얼굴이 바꼈다. 다시 아둠이 떠오른 것이다.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그의 얼굴은 증오와 후회, 절망으로 추악하게 비틀려 있었다. "난...그런 샤를이 부러워서 견딜 수 없었어! 내가 가지지 못한 미덕과 재능을 모두가진...하지만 밉지는 않았어...그런 일을 벌일만큼 미워하진 않았는데...그랬는데..." 죠제프는 얼굴이 푹 수그러 들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독백이 이어졌다. "병상의 아버지는 임종 직전에 나와 샤를만을 머리맡에 불렀지...세 사람 외엔 아무도 없는 방에서 다음 왕이 결정됐다. 믿을 수 없지만, 그건 나였다. 다들 믿을 수 있겠나? 선왕은 정말로 나를 왕으로 지목한 거야. 양친에게서 바보라고 불리던 내가! 모두가 다음 왕은 샤를이라 했는데도 아버지는 날 왕으로 삼은 거야!!" 그러면서 죠제프는 비척비척 비토리오를 향에 걸음을 옮겼고, 아직 당혹감에 어쩔 줄 모르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뱃속 깊은곳에서 부터 소리를 끌어 올려 외쳤다. "나는 찬탈 따위 하지 않았어! 나는 정말로 아버지에게서 왕으로 지명된 거야! 나는 정당한 갈리아 왕이라고!!" 하고 갈리아 왕이 양팔을 높이 내질렀다. 이곳에 모인, 그를 정당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회장의 귀족들에게 과시하는 듯한 행위였다. 하지만 곧바로 그 팔은 힘없이 떨어내려왔다. "나는 기뻤어. 아버지는 병중이었지만 그 말은 절대적이니까. 나는 왕이 된거야. 그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샤를보다 우월하다는 느낌을 느꼈지. '샤를의 절망감은 어느정도일까? 바로 손 안에 있던 절대권력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허탈감은 어떨까?' 그 얼굴이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어! 그래서 옆을 슬쩍 봤는데...어땠을거 같나? 교황, 샤를의 얼굴이 어땠는지 알아?" 갑자기 죠제프가 교황의 멱살을 잡고, 자기쪽으로 홱 들어올렸다. 맞대어진 이마로 비토리오는 죠제프의 분노와 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웃고 있었어! 녀석은 내 상상을 뛰어넘었던 거야! 녀석은 빙긋이 웃으면서 기꺼워하며 '축하드립니다 형님. 부디 좋은 왕이 되실겁니다. 부족한 몸이지만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하며 내 손을 잡았어! 지금도 똑똑히 기억해...그 어떤 질투도, 악의도, 비아냥도 없이 진심으로 내 즉위를 축하해 준거야..." 교황의 멱살을 잡은 손에 힘이 풀리고, 괴로운듯한 얼굴로 죠제프가 억지로 말을 짜내간다. "왜 화를 내지 않은거야...왜 그렇게 착해빠졌던 거냐고...왜...왜 넌 내가 갖지못한 걸 모두 갖고 있는거냐고...그것에 난 질투했다. 샤를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착했는데, 난 정말 쓰레기 같은 생각만 하고...미련하고 보기 흉하고, 무능하고, 냉혹하고, 거짓말쟁이에 잔인하고 멍청하고바보에질투에가득찬겁쟁이였지...그게...참을 수가 없었어." 죠제프의 눈에 뜨겁고 매서운 광기가 서렸다. "난 동생이 미워졌어. 왠지 알겠지, 교황? 아니, 나같이 좁고 비틀어진 마음을 관대하고 자애로운 교황님이 알 수가 있나. 여튼 그 질투는 바로 증오가 됐고, 정신을 차려보니 샤를은 죽어있었어. 그래, 내가 샤를을 죽였어. 하지만 찬탈이 아냐! 그저 미웠기 때문에 죽였어! 그게 뭐가 잘못됐지? 나는 왕이야. 내 자리를 위태롭게 하는것은 뿌리를 뽑아야지. 동생을 등에 업고 내 자리를 뺐으려는 자들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손을 쓴 거야! 아니, 그런 명분도 필요없지. 난 왕이니까. '죽이고 싶어서 죽였다.' 그외에 무슨 이유가 필요하지? 왕권은 시조 브리밀로 부터 받은 신성한 것이고, 따라서 왕의 행동은 신의 행동이지! 하지만 아무도 그걸 믿지 않았어! 내가 왕으로 지명받았단 증인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다들 나를 찬탈자라 부른거야! 동생을 죽이고 왕위를 빼았은 살인자라고!!!" 죠제프의 독백이 트리스타니다를 뒤덮는다. 차원의 벽을 넘어 제국 공용어로 자동 번역된 말이 사령실에 울린다. 광기에 가득 찬 웃음소리가 우주를 채운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그래! 내가 죽였어! 내가 샤를을 죽였어! 샤를이 너무 똑똑한게, 샤를이 너무 착해빠졌던게 나쁜거야! 그 말과 그 얼굴이 자기 목을 졸라 맨 거라고!! 조금이라도 날 부러워 했다면 죽지 않았을텐데 말야! 나는 마법을 쓸 수 없었으니 독화살로 녀석을 쏴 죽였어! 갈리아 그 누구보다 고귀하고, 마법의 재능이 뛰어난 왕자가 가릴아 그 누구보다 천박하고 무능한 자의 눈먼 화살에 죽는다! 그것뿐만 아냐! 샤를 녀석의 딸도 노렸지. 엘프가 조제한 마음을 무너뜨리는 마법의 약을 조카인 샤를롯에게 먹이려 했지. 하지만 그 어미가 대신 먹더군. 그 덕분에 그 예쁜 여편네가 보기 좋게 미쳐버렸어! 인형을 자기 딸이라 굳게 믿고, 진짜 딸을 내가 보낸 자객이라 생각하고 공포에 질려 어쩔줄 몰라하지...! 아, 교황 그거 알고있나, 왜 샤를롯이 타바사란 가명을 쓰는지? 그 타바사란거...인형 이름이얔! 인형을 딸이라 생각하니 그 딸은 인형 이름으로 인형같이 살고 있는 거라고!" 다시 광소가 두 세계를 감싼다. "나는 정말 후회하고 있어. 녀석이 사랑하던 여인이, 그 딸이 입은 상처는 그날 느낀 고통에 비하면 약하지. 조국을, 백성들을 힘들게 해도 그날 한 후회에 비기지 못해. 그런데, 그런데 후회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가슴이 아플까...그래, 그건 내가 인간이라서야! 나는 보잘것 없는 인간이야! 그날 그일 외에는 어떤것에도 죄책감이 느껴지지 않아! 왜 신은 나에게 '허무'를 준거야! 그래, '허무'! 내 마음은 '허무'야! 텅 비었어!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증오도 없어! 샤를에게 활을 쏜 이후로 내 마음은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된거야! 태엽이 끊어진 시계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단지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쓰레기라고!!!" 그렇게 외친 죠제프는 전신에 힘이 풀려 맥없이 무너졌다. 그리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본 채 헛소리처럼 중얼거림을 계속했다. "그래서 난 결심했어. 신을 죽이자. 형제를 죽였으니 백성을 죽이자. 도시를 멸망시키고 세계를 뒤엎자. 모든 미덕과 명예에 침을 뱉고, 모든 사람들의 영광에 종지부를 찍고, 돌이킬 수 없는 시간에 후회하기 위해, 샤를에게 손을 쓸때보다 더 죄책감을 느낄수 있을 때 까지...세계를 유린하고 싶었어...사람으로서 눈물을 흘리고 싶었으니까......" 죠제프는 얼굴을 내려 주위를 둘러 봤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봤다. 모든것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교황과, 믿음을 부정당한 신관들과, 귀족의 권위가 위태로워진 마법사들과 신권을 내던진 여왕과, 성지 탈환을 단념한 황제와, 눈물이 그렁거리는 야이샤와, 이성적인 가운데 한줄기 연민을 보이는 엘프들과...자신의 모든것을 이해해 주는 루이즈의 눈물과, 자기와 마찬가지로 '허무'에 휘둘리고 있었던 딸을 보았다. 갈리아 왕의 뺨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양손을 움켜쥐고 자신의 영혼이 담긴 포효를 내질렀다.
"해냈다...나는 해냈어!! 이겼다고! 신을 죽였어!!! 내 모든 것을 앗아간 브리밀 놈의 귓방망이를 후려 갈긴거야!! 으하ㅏ하하하하하!!!! 이제 할케기니아는 끝이다! 교회는 쓰레기장 행이다!! 귀족따위의 계통마법은 쓸데없는 것이다!! 어때, 꼴 좋다 이 시*것들아!!! 브리밀 이 새*야! 보고 있냐!? 니가 만든 세계는 무너졌다!! 네놈이 내린 계통 마법은, '허무'의 마법은 은하 제국의 포탄 한방에 스러졌다! 신이 내린 모든 미덕과 영광, 그리고 네놈이 지킨 인간 모두가 침을 뱉고 있구나!! 신을 믿는 할케기니아의 풍습은 끝났다! 믿음은 소멸했다! 네 충실한 애완견인 교황마저 네 가르침을 닞고 분노에 몸을 맞겼으니 말이다! 으이힝하항히히하하핳하하하!! 브리밀, 니가 내려준 '허무'의 힘은 대단하다고! 네녀석이 건 봉인은 너무 훌륭했어! 네녀석이 모으게 한 어둠의 힘은 너무나고 강렬했어!!! 네 자신이 세운 모든것을 무너트릴 만큼!!!!!!" 죠제프는 움켜쥔 두 주먹을 하늘 높이 내지르며 외쳤다.
"나는~~~!!!! 브리밀을~~~~!!!!!! 이겼다~~~~!!!!!!!!!"
웃음 소리가 퍼진다. 온 세계에 울린다. 광인의, 비극의 왕의, 인간으로서 무능하다고 불렸지만, 실로 무능하지 않았던 피해자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인간이 신을 죽였다. 교회의 권위와 경전의 가르침은 폭력과 음모 앞에 무릎을 꿇었다.
육천년간 어리석은 신을을 찬양하던 부조리극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제 30화 부조리극, 막을 내리다 END
본편 하나 남았다...특별편 네개 남았다...
제로마를 끝까지 안봐서 잘 모르겠는데, 제가 들은바로는 죠제프나 샤를이나 둘다 막장이었다 알고있었는데 역시 크로스오버SS라서 캐릭터가 바뀐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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