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 죠제프님!!"
남자의 뒤집힌 목소리가 날아왔다. 신성 알비온 공화국의 초대 황제 올리버 크롬웰이었다.
" 아, 아니 세상에! 정말로 그대의 말 대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황 성하가 마리앙으 폐하나 알브레히트 각하뿐 아니라 내 목숨까지 노리고 있다는 그대의 말에 한치도 거짓이 없음을 잘 알았습니다! 믿을 수 없군요, 정말로 믿기 힘든 일입니다! 한때 성직자였단 사람으로서 성지탈환을 꿈꿨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설마 교황성하께서 나까지 화형에 처한다니! 거기다 성지는 온데간데 없고 남은건 소환게이트 하나뿐이라니!!"
크롬웰은 흥분해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사다리를 내려 왔다.
그는 은색으로 빛나는 매끄러운 표면에 순간 발을 헛디디다가도 겨우 균형을 잡고선 해치 안을 들여다 보면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밖에 나오셔도."
"흠, 그럼 가 볼까요."
"거참, 긴장하시기는."
그런 속삭임이 잠시 있은 뒤, 몇명의 남녀가 해치에서 강하정 위로 뛰어 올랐다. 전원, 긴 귀를 지닌 늙은 엘프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 우리들은 사하라의 엘프 각 지파 위원회를 대표하는 대사로서 이곳에 파견됐다. 우리 엘프들의 총의를 전하지, 엘프는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의 연방 설립을 지지하며, 그대들 야만...미안하군. 이젠 야만인이 아니지. 그대들 할케기니아 사람들과의 평화제의를 수락한다."
전직 주교였던 크롬윌도 옆에서 엘프들의 말에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나도 한마디 하겠소! 성지 탈환이라는 레콘기스타의 대의는 잘못된 것이었소! 고로 지금부터 엘프에 대한 모든 편견과 오해를 버리고 그들과 손을 잡을 것이오! 나는 저기있는 비서 셰필드와 죠제프 님으로부터 모든 진실을 목격했소! 성지는 풀 한포기 없는 죽음의 황야라는 것을!!"
크롬웰이 선언했다, 레콘기스타의 대의를 내던지겠다, 고. 이로서 할케기나아의 모든 세속 통치자는 성지 회복 운동을 부정하는 꼴이 됐다. 거기다 엘프와의 화친을 선언, 이는 교회와 교황에게 반역한다는 것과 같은 말로서 세속적 권위와 조상의 권위는 서로 대립하게 된 것이다.
다시 푸슛, 하고 다른 배의 해치가 열리고, 그 안에서 '플라이'와 함께 뛰쳐 나온 것은 마리앙느와 발리에르 공작, 알브레히트
3세와 하르덴베르크 후작, 그리고 마자리니였다. 땅으로 착지한 그들 중 마리앙느가 한발 앞으로 걸어나와 고개를 숙였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인것은 교황 성하를 이용하기 위함이었음을 고백하고 참회합니다."
알브레히트 3세도 앞으로 걸어 나와 고개를 숙이곤
"
미안합니다 성하. 사실 우리들은 이미 옛적에 성지로 안내받아 사하라 엘프들과 화해하고 성지의 실태를 목격했습니다. 시조의 힘이
폭주함으로 인해 성지는 사라진 지 오래고, 세계가 멸망에 위기에 있었으며 엘프들이야 말로 그런 위기에서 우리들을 지켜주고 있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자리니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모든것은 다 그들 덕분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성지로 안내하고, 또 직접 갈 수 있게 해 줬습니다."
마
자리니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엔 어느샌가 은백색으로 빛나는 두대의 길쭉한 배가 두척 서 있었다. 드라트였다. 양이 앞자리에 앉아
조종하는 드라트에는 분홍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루이즈가, 프레데리카가 조종하는 드라트에는 쓸데없이 가슴이 크고 긴 귀를 지닌 여자가
금발을 나부끼고 있었다. 땅에서 높이 떠 있는것을 보고 무서워 하는 티파니아였다. 티파니아는 안전벨트로 몸을 지탱하면서 주춤주춤
일어서더니 머뭇대며 손을 흔들었다.
"저, 저기..."
일단 용기를 내서 뭔가 말해보려 했지만 곧바로 푹하고 고개를 숙여버리는 티파니아. 앞에 앉은 프레데리카가 뒤돌아보며 미소와 함께 '괜찮아, 모두 함께 하고 있으니까.'하고 격려하자 엘프 소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티파니아라고 합니다-!!!"
그
녀가 부끄럼을 떨쳐 버리겠다는 듯 목소리를 높이자, 스피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갑자기 울려 퍼지는 큰 소리에 놀라 이명에 귀를
눌렀다. 프레데리카가 쓴웃음을 지으며 목소리를 줄일것을 부탁하자 티파니아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고 다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저는 티파니아라고 합니다. 알비온의 사우스고타 지방, 웨스트우드 마을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는 엘프이고, 아버지는 프린스 오브 모드이며, 제 마법계통은 '허무'입니다."
모
드 대공(프린스 오브 모드). 전 트리스테인 국완 헨리의 동생이자 전 알비온 왕의 동생. 모드 대공 투옥사건의 진상은 은닉되
있기에 많은 외국인들은 무슨일인지 모르고 있겠지만 알비온에서 온 귀족들은 이곳저곳에서 흘러 나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모르는 다른 귀족들도 지금 상황에서 모드대공이 엘프와 연을 맺고 딸을 얻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왕족이 엘프를
아내삼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하프엘프가 '허무'의 사용자라는 사실은 그간 할케기니아의 상식을 뒤집는데에는 충분한 발언이었다.
아니, 이미 놀라운 일이 급작스럽게 터져나와 이미 너덜너덜해진 시점에서 이것은 그야말로 결정타였다. 고도를 낮추는 드라트
뒷자리에서 루이즈가 벌떡 일어서서 가슴을 펴고 소리쳤다.
"교황 성하! 이 사건에 대해서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이 행사는 처음부터 엘프와 인간의 화해와 강화 선언이 목적이었습니다! 연방 성립 조약식은 할케기니아의 귀족을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증인으로 삼고자 한 명분이었습니다-!!"
루이즈는 사과의 말을 하고 있었지만 말투는 전혀 사과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래를 내리보고 있었다.
태어난 이래 가장 눈을 크게 뜬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비토리오를,
말을 잃고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인 사람들을,
시내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성에 귀 기울이고 있던 사람들을.
그런 가운데 한 사람, 줄리오만이 노호성을 토했다.
"
다, 당신은 지금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런 횡설수설을 믿으라고 하는 거냐? 너네들 전부는 양이라는
이국의 군인이 만들어낸 거짓에 홀려 할케기니아을 엘프에게, 아니 '프리 플래닛츠'라는 정체모를 이국에 팔아 넘길 셈이겠지! 그
남자의 국가는 할케기니아에 침공을 계획하고 있고, 당신들은 우리를 회유해 식민지배에 이용할 속셈을 우리가 모를 줄 아나!"
그
는 평소의 상쾌한 얼굴 대신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검을 치켜들고 외쳤다. 양은 침략군의 첨병이며, 할케기니아의 상식을 초월하는
기술로 이곳을 침략할 것이며, 마리앙느와 알브레히트 3세와 크롬웰은 식민통치의 용이성을 위해 그들에게 포섭된 것이라고. 하지만 그
말에 갈리아 왕은 시시한 것을 들었다는 듯 줄리오를 내려다 보았다.
"허허...양의 고향인 '프리 플래닛츠'가 할케기니아를 노리고 있다...그말인가?"
"그래! 당신정도 되는 사람이 그걸 인지하지 못할 리가 없지!"
"그렇다면 자넨 큰 오해를 하고 있군. 양의 고향인 '프리 플래닛츠'는 이미 없어졌다. 그곳은 옛적에 멸망하고 '은하 제국'의 속령이 되었지."
드라트를 탄 양은 복잡한 얼굴로 그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줄리오는 그 말에 수긍하지 않았다.
"그의 고국 이름이 어쨌던지간에 지금과는 큰 상관이 없다! 설마, 당신...처음부터 할케기니아를 '은하 제국'인기 뭔지 하는 곳에 팔아넘기고 그들의 충복이 돼 자신의 사욕만을 채울 속셈으로 이런 짓을 벌인것이냐...!?"
그가 투구를 벗어 던졌다. 지금까지의 분노를 내 던지는 것 마냥 던져진 투구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구르고, 오른손에 쥐어진 칼이 죠제프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죠제프는 꼰 팔을 풀어 가슴을 펼치고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그럴리가. 그런 마음은 추호도 없다."
그 대답을 듣고 줄리오의 인내심은 바닥에 다달았다.
"없어? 없다고!? 왜 그렇게 말 할수 있지? 그런 말을 내가 믿을거라 생각했나!?"
"믿으라는 말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할케기니아는 은하 제국의 침공을 받지 않고 있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무, 무슨 바보같은 말을...지금 침공받지 않는다 해도 후에 당할 수 있지 않나!"
"그러니까 그럴 일이 없단 말이다, 빈달브."
죠제프가 자신있게 단언했지만, 줄리오도, 비토리오도, 이 대화를 듣고있는 모든 사람들이 믿을 근거로는 부족했다. 후훗 하고 가볍게 웃은 죠제프는 왼손을 들어
"뭐 정 그렇다면 당사자에게서 직접 이야기를 듣는게 어떻겠나."
하고 양 일행이 타고 있는 강하정 아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 거기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그 금발 청년은 그 자리에 있었고, 검정색을 기조로 곳곳에 은사(銀絲)를 수놓은 옷 위로 검은 망토를 걸치고, 왕관처럼 빛나는 금발과 왕의 위엄을 풍기고 있었다.
"할케기니아의 귀족 제군들, 그대들을 보게 된건 처음이로군. 짐은 은하제국 로엔그람왕조 초대 황제인 라인하르트 1세로, 오늘 이 자리에 입회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청
년은 자신이 은하제국의 황제라고 자칭했다. 최근 몇개월동안 '드라트'를 비롯한 수많은 초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물건들을
트리스테인으로 보낸 소문의 초 대국환제가 혼자 회장에 와 서 있었다.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그 외에는 평범한 청년 남성이 혼자 서
있는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니, 조금 집중하자 특이한 것이 눈에 띄었다. 발언과 입의 움직임이 맞지 않았다. 경기장의 사람들이 이에 집중하자 발 밑이 땅과 떨어져 공중에 떠 있는것도 눈에 들어왔다.
"아, 입회 했다곤 해도 짐은 회장에 있는것이 아니로군. 지금 회장에서 그대들이 보고 있는것은 짐의 입체영상으로, 쉽게말해 환상이다. 현재로서 우리들은 그쪽 세계에 쉽게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죠
제프의 가고일이 긴 꼬리를 흔들어 라인하르트의 몸을 베어갈랐지만 그 모습이 잠시 일렁인 후 다시 원래의 모습이 투영됐다.
라인하르트의 유창한 할케기니아어는 은하제국 공용어를 실시간으로 자동 번역해 최대한 그의 음색과 비슷하게 합성한 것이었다. 입
모양과 발언간에 시간차가 생긴 것은 그 때문이었다.
라인하르트는 양 팔을 들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짐은 여기에 선언한다. 은하 제국은 할케기니아에 대해 일체의 야심을 갖지 앉을것이며, 상호 불이해와 의심, 무엇보다 미신에 근거해
벌어지는 무질서한 전란도 바라지 않는다. 이에 짐은 두 세계가 손을 잡고, 질서있는 교류아래 힘을 합쳐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게
함께 발정해 나가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은하 제국 로엔그람완조 초대 황제 라인하르트 1세의 이름으로 게르마니아=트리스테인 연방의
설립을 승인함을 선언한다. 뿐만아니라 갈리아, 알비온, 로마리라을 포함한 할케기니아의 모든 국가에 평화적인 교류를 요구하는
바이다."
라인하르트는 숨을 한번 크게 들위시고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 처럼.
"이 땅에 평화를!! 은하 제국민, 사하라의 엘프, 할케기니아의 인간을 포함한 이 땅의 모든 생명체간의 평화 구축을 짐은 진심으로 바란다!!!"
고요함이 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극서은 감동이나 경외같은 종류의 고요함이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것을 맞닥뜨리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류의 것이었다.
"...난데없이 무슨 말입니까?"
마
침내 교황이 입을 열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엔 평소 신자들에게 보여주던 인자한 미소는 없었다. 죠제프에게 보이던 날카로운 눈빛도
없었다. 거기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대응에 고심하는 씁슬한 일그러짐만이 드러나고 있었다. 이제껏 죠제프를 향해있던
성장도 라인하르트를 향해 있었다.
"당신은 대체 무슨 짓을 벌이는 겁니까. 갑자기 나타나 은하제국인지 뭔지하는 들어본적
없는 나라의 황제를 자칭하고서 침략의 의사가 없으니 안심하라고 단언하질 않나, 심지어 브리밀교의 중심지인 로마리아와 교황인 저에게
이교도이자 성지를 탈환하기위한 적대관계에 있는 엘프들과 화친하라니요?"
"그 말 대로다, 교황이여. 로마리아는 시조 브리밀이 임종한 곳이며, 조왕 성 포르사테 이후 시조의 묘소를 지키는 묘지기라는것 또한 알고 있다. 지금은 황국이자 교황이 왕을 겸하고 있었던가?"
"
그렇습니다. 로마리아 대성당을 주 거점으로 두고 나는 교황이라는 직책하에 모든 성직자와 신자들을 비호하고 지도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뭡니까? 당신이 말하는 그 은하 제국의 황제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 땅에 침공할 의지가
없다는것은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교황의 이 질문은 당연했다. 할케기니아에 사는 그 누구고 은하제국이란 곳을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존재자체는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곳에서 왔다는 드라트나 강하선은 날아오고 있었지만 국가 자체를 본 사람은 없다.
공식적인 교류도 전혀 없었기에 그 통치자가 누군지 증명할 수 없었다. 하물며 아무리봐도 평범한 인간 청년으로 보이는 라인하르트를
보고서 그가 황제라고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데 '침략할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것을 믿어주는것이
이상한 상호아이었다. 할케기니아의 각 통치자들이 속고있을 가능성도 충분했다.
그리고 그 점은 라인하르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
그러한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갑자기 짐과 같은 젊은이가 '짐은 황제다. 짐은 그대들과의 전쟁을 원치 않는다. 평화를
구축하겠다.'고 말해봤자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 만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는 타인의 위에 서 있을 힘이 없는
것일테고."
그 말에 교황도 일단 납득해 줬다.
"그건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니 다행이군요. 그렇다면 그 점을 어떻게 증명하실 건지?"
그리고 바로 입꼬리를 비집어 올리고는 증명을 요구했다.
"좋다. 그건 간단하지. 지금 바로 보여 주겠다."
지
금 가능하다고 말하자 교황은 조금 당황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은하제국은 각종 소형선박을 보내고 있기에 존재하는것은 사실이라 말
할수 있겠지만 라인하르트가 황제라는 증명서를 어떻게 이 자리에 내 놓을 수 있다는 말인가? 침공할 마음이 없다는 것 또한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있지 않는한 확인 할 방법이 있을리 만무했다. 물론 교황은 이를 알고서 굳이 따져 물은 것이었다.
"요점은 '짐의 말이 모두 거짓이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짐은 황제가 아니고, 은하제국은 할케기니아에 야심을 품고 있다면 어찌되는가.'라는 것 아닌가?"
라
인하르트의 입체영상은 오른팔을 들어 올려 곧장 하늘을 가리켰다. 그 손 끝은 수많은 화룡의 머리위, 흰 구름이 감도는 푸른 하늘을
가리켰고, 회장 안팍의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올려다 봤다. 하늘은 여전히 맑고 푸르렀다. 두둥실 떠 가는 구름은 한눈에 봐도
평온했다. 하지만 눈이 좋은 사람은 그 구름 너머로 작은 얼룩이 있음을 눈치챘다.
회장 곳곳에서 희미한 중얼거림이 터져 나왔다.
"뭐지...?"
"하늘에 뭔가 있어..."
몇
몇이 저편 너머에 있는 작은 얼룩을 가리킨다. 곧 시력이 특별히 좋지 않은 사람들도 그 얼룩들을 확인했다. 그 백색 반점은 저편
너머 푸른 하늘에서 천천히 커져가고 있었다. 게다가 점은 하나가 아니라, 흰 점을 중심으로 수가 늘고 있었다.
회장 전체에 신음이 울려 퍼졌다.
"뭐지? 저게 점점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데..."
"새...라고 하기엔 고도가...거기다 수도..."
귀족들은 고개를 돌려 점점 증가하는 점을 시야 밖으로 보내려 했지만 그것들은 더 이상 점이라 하기 힘들정도로 커져갔다. 어느덧 흰 반점은 흰 배의 형상으로 바꼈다. 신음소리는 어느덧 놀라움과 공포로 가득한 외침이 돼 있었다.
"설마...배...인건가!?"
"그럴리가...! 구름보다 한참 위를 날고 있는것이 배라니...!!"
"틀림없는 배다! 엄청나게 거대한 배다!!"
"그, 그럴수가! 구름보다 크고 높게 나는 배라니...설마 이것이 은하 제국의 배인가!"
하늘을 올려다 보는 사람들은 원래 열려있던 입을 더욱 크게 열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트리스타니아 사람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두눈으로 식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것은 흰 배였다.
하
지만 그것은 배라고 하기에는 너무 컸다. 아직 구름보다 높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지상의 모든 사람들이 배를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갈리아 양용함대의 기함 '샤를 오를레앙'호는 전장 150메일을 자랑하는 거선이었지만 회장을 향해 서서히 강하하고 있는 그 배는
오를레앙 호의 족히 다섯배는 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재질 또한 어떻게 봐도 나무가 아닌 표면이 잘 다듬어진 금속이나 도자기 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배 어디에도 돛의 형상을 한 것이 없었다.
라인하르트는 회장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에 즐겁다는 듯 미소를 띄우며 말했다.
"이것은 짐의 배이자 은하 제국의 총 기함인 '브륀힐트'다. 이번 식전에 친선 함대 기함으로 적합하단 생각하에 파견했다."
은
하 제국 황제의 설명이지만 이것이 사람들 귀에 닿았는지 여부는 불분명했다. 전 할케기니아의 사람들은 하늘에 눈을 뺐겼기
때문이었다. 그 거함은 흘러가던 구름이 흩뿌려질 정도로 거대했기에 있을수 없는 속도로 강하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브륀힐트.
라인하르트의 개인함으로, 그가 대장으로 진급했을때 하사됐다. 이후 제국군의 총
기함으로 발탁. 전장 1,007m의 은백색으로 빛나는 유선형의 우아하고 섬세한 자태는 백조로 비유되곤 했다. 비용에 상관치 않고
장비들이 채용되 그 모습에 어울리지 않게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지녔다. 그리고 지상으로 강하해오고 있는건 브륀힐트만은 아니었다.
하얀 배의 뒤를 이어 차례차례로 배가 강하해 오고 있었다. 하늘 가득 들어찬 점들은 모두가 대기권으로 강하하는 은하제국 함대의
함선이었다.
이윽고, 트리스타니아의 하늘은 은하제국의 함선으로 가득 들어찼다.
그 중 어느 하나도
할케기니아의 전열함보다 작은것이 없었다. 거기다 돛을 지니지 않고 바람을 무시한 채 날아오고 있었다.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었고,
그들 모두가 차례로 머리 위로 내려앉았지만 브륀힐트 만으로 하늘의 절반이 가려저 잘 보이지 않았다. 그 거구 저편으로 보이는
전함의 수는 얼핏 봐도 천 척을 웃돌았다. 조인식장 상곡을 선회하던 화룡 무리가 공포에 찬 비명을 지르고 패닉상태에 빠져
이곳저곳으로 무질서하게 날아다니고 지상의 환수들도 두려움의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로...아니, 인간들이야
말로 이 중에서 가장 공포와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 시각, 성지.
트리스테인은 낮이었지만 시차 때문에
사하라는 초저녁이었다. 분화구 중앙엔 400메일 정도로 확대된 문이 있었다. 그 문의 빛 속에서 은하제국의 구축함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문 부근엔 이미 게이트를 통과해 상승중인 구축함이 열척 있었다. 전함의 대열은 하늘 저너머 대기권 밖으로 이어지고
있었고, 그 모습을 분화구 주변에 자리잡은 엘프 수색대원들과 인간들이 올려다 보고 있었다. 분화구 기슭에 선 금발 여성
엘레오노르는 전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 참...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야? 새벽부터 게이트 통과가 시작됐는데 아직도 끝나질 않으니 원!"
그 옆에서 뒹굴거리던 녹색머리의 마틸다가 졸린듯이 답했다.
"으으음...예정은 3600척이라 했던 것 같은데...지금...은...대충 1200정도 나왔나?"
"굳이 말 안해도 알고 있거든? 그리고 1200이 아니라 1800이야!"
"어쨌던 절반정도 나온 거잖아...아함. 양이 고향에 돌아가는 것 치고는 너무 성대한 맞이행렬인데..."
하고 말하곤 마틸다는 크게 하품을 한 뒤 데굴 굴러 옆으로 돌아 누웠다. 자기 오른팔을 베고 있는 걸로 봐 한숨 자려는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보고 가뜩이나 신경질 부리던 엘레오노르가 화를 못참고 소리질렀다.
"너무 여유 부리는거 아냐!? 당신 전 애인이 본래 나라로 돌아간다는데 지금이라도 식장에 가서 작별 인사라도 하고 오지 그래?"
두 사람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마틸다는 옆으로 돌아 누운채 귀찮다는듯 대답했다.
"화 내게 해서 미안해. 하지만..."
그녀의 왼손은 자신의 아랫배를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고 있었다.
"선물은 이미 받았으니 외롭지 않아."
하고 중얼거리는 마틸다의 등을 엘레오노르가 쓸쓸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 않고 그저 묵묵히 전함의 행렬을 바라보기로 했다.
역시 같은 시각, 이제르론 회랑.
양
을 발견했을 당시보다 개선과 증설을 거듭해, 지금은 작은 요새와도 같은 '아인슈타인 로젠 브릿지'의 감시·관측 사령소의
중앙사령실. 거대한 입체 디스플레이와 수많은 오퍼레이터들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사령관 자리에 몸 어디에도 쓸오없는 구석을 남겨두지
않은 은하제국의 장군이 앉아 있었다. 지령실의 콘솔위로 투영되는 영상에는 샹 드 마르스 연병장에 투영되는 라인하르트의 모습과
행성 위성궤도에서 관측위성이 촬영중인 연병장 주변의 영상이 보였다. 물론 브륀힐트에서 전송된 영상도 있었다. 하지만 벌꿀색을 띄고
제멋대로 뻣쳐나간 머리칼을 지니고 그다지 장신은 아닌 사령관의 눈은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노호성을 지르며 문을
군화로 걷어찼기 때문이었다.
"미터마이어 원수..."
유감스럽다는듯 사령관의 이름을 부른것은 옆에 서 있던 율리안이었다. 원수또한 매우 유감이라는 듯한 얼굴로 청년을 되돌아 보았다.
"민츠 사령관, 귀관이 신경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것은 제국군 내에 한 장군의 극히 사적인 취미 문제니까."
그렇게 설명을 받은 율리안도 한숨을 쉬면서 콘솔 위의 모니터를 본다. 거기엔 당황해 하는 할케기니아 귀족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메크링거 상급대장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이번 작전이 몇시간 지연된 것에 대한 것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아마 양 제독도 메크링거 상급대장의 의견에 동의하고 있을 겁니다."
율리안의 의견에 삼십대 초반의 젊은 장군은 한숨섞인 반응을 보였다.
"
하지만 차원의 벽을 깨고 이쪽 우주로 귀환하려면 이만큼의 대함대를 총동원해서 웜홀을 만들어야 하지. 거기다 이 이후로 할케기니아
인들이 게이트에 간섭할 수 없도록 지켜야 한다고. 그들에게 성지 탈환운동을 포기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민츠 사령관도
이 작전에 동의했던 걸로 기억한다만?"
"네...양 제독을 되찾기 위해서, 양 우주에 평화를 가져다 주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하고 동의하는 율리안이었지만, 그 얼굴엔 마지못해 하는 표정이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볼프강 미터마이어.
선
임원수이자, 로엔그람왕조 은하제국 우주함대 사령관. 로이엔탈과 함께 '제국의 쌍벽'이라 불리던 사내로, 함대 고속전에 정평이 나
있어 '질풍 볼프'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라인하르트는 조인식장에 홀로그램을 통한 참석을 해야 했고, 가능한 한 빨리 함대를
게이트로 통과시켜야 했기 때문에 미터마이어가 본 작전의 지휘를 맡게 되었다. 이번 합동 작전에는 몇가지 목적이 있었다. 단순히는
연방 성립을 축하하는 친선함대의 파견과 양 제독의 회수었지만 그 이면에는 로마리아에 암약하공 있을 가능성이 높은 '허무'의
사용자를 꾀어내는것과 할케기니아인의 성지탈환운동을 저지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야 거리 산출이 성공했다.
은
하 제국과 구 동맹의 총력을 결집하고, 각 분야의 과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징발 가능한 모든 컴퓨터를 총동원한 결과 소환 게이트를
통과하지 않고 워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일반 함선에 탑재된 워프엔진으로는 출력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출력을
높이면 이를 위해 필요한 에너지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요새와 같은 거대 질량체가 되 버리고
만다. 그렇게 거대한 질량체를 보낼 만한 웜홀을 만들게 되면 위험부담이 너무 커져 버린다. 현재 소환게이트는 수수께끼 투성이로,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또한 할 수 없는 상황. 따라서 양 일행의 회수에는 시공의 안정 확보가 최우선 과제였다. 따라서
시공전이는 단 한번으로 제한됐다. 이에 워프 엔진을 개조한 함대를 원격 조작하여 소환게이트를 통과시키고 일행을 회수한 후, 행성
중력권을 벗어난 주역으로 이동하여 워프 엔진 수천기를 원격조작 및 자동 모드로 전체를 동기화, 양 일행이 탄 함이 통과할 만한
최소한도의 웜홀을 발생시키는것이 양 웬리 일행 회수작전의 내용이었다.
몇달 전, 양과 라인하르트가 물의 탑에서 생사를 확인한
후, 양은 막바로 엘프들과 연락을 취했다. 물론 갑작스레 대지와 대기의 정령을 뚫고 날아간 다수의 비행체에 깜짝 놀랐던 엘프들도
비댜샤르를 학원으로 파견한 덕에 연락은 쉽게 이루어 졌다. 그리고 저쪽 게이트는 이제르론 측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 우주
역사시대부터 천년에 걸쳐 돌발적인 게이트 사고가 일어 났던것, 현재 감시 체계하라면 새로운 게이트 사고나 성지의 대폭발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것 등이 설명됐고, 엘프들은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었지만 이전에 양이 설명했던 적도 있고하여
어떻게 말을 믿어준 듯 하다. 하여튼, 이제르론에서 게이트를 관리하는 한 성지의 폭풍은 일어나지 않고 흙, 물, 공기의 오염도
그치게 된다. 거기에 새로운 무기가 게이트를 통과하는 일도 없어져 정령들도 노여움을 그쳐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엘프들은 성지의 봉인을 풀었고, 양을 중개역으로 은하 제국와 함께 차후 대응에 대한 협의에 들어갔다. 이
협의를 위해 많은 통신장비들이 성지 인근 엘프마을에 설치됐고, 엘프 각 지파도 잇달아 대리인이나 대표를 파견하여 협상자리를
채웠다.
게이트의 진상이 얼추 밝혀지고, 양과 프레데리카의 귀환을 위한 거리산정도 조금 기다리면 될 뿐이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고, 까딱하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그
중 하나는 게이트가 시조 브리밀의 마법계통인 '허무'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할케기니아 사람들의 무지와 오해로
인해 성지 탈환운동이 격렬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만에 하나 루이즈나 티파니아 같은 현 시대의 '허무'의 사용자가 새로운
게이트를 만들게 되면 이제까지의 일은 헛수고가 돼 버리고, 할케기니아 한복판에 성지와 같은 대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전력
차로 인해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할게기니아 인이 엘프들을 토벌하고 성지를 탈환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들은 브리밀교라는 종교 탓에
잘못된 지식을 갖고 있어서 대화가 어려웠다. 최악의 경우, 오해와 편견과 미신을 근거로 성지에서 새로운 마법을 사용해 게이트를
폭주시킬 수도 있었다.
게이트가 폭주하게 되면 무슨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기에 대해서 샤프트는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사테를 몇가지 짚어 보았다.
·두 우주의 충돌로 인해 양 우주의 소멸 혹은 융합.
·전 우주에 걸친 시공 균열로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흡수.
·중력 밸런스 붕괴로 쌍월이 제2지구(할케기니아)에 충돌/
·게이트가 은하제국 측 우주로 직접 연결돼 제2지구의 모든것이 진공으로 빨려 들어감.
etc...
이에 은하제국과 이제르론은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머리를 감싸쥐었고, 엘프들도 잘은 모르겠지만 사태의 심각성은 이해한 듯 하다.
그
렇다고 할케기니아를 무력 제압할 수는 없다. 제압하려고 해도 제압할 인원의 투입이 불가능 하니까. 소환게이트를 통과 하면서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여전히 불명이고, 워프는 예상 비용과 리스크가 너무 컸다. 양 일행 단 둘을 회수하기 위해 무인 함선 3600척을
보내야 했으니까. 거기다 그 함선을 보내기 위한 게이트 확장 및 유지에도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 함선을 원격 조작하여
할케기나아를 포격·파괴해 '허무'의 혈통을 근절시키는 것은 지극히 비 인도적인 방법이고, 미지의 기술과 마법, 아득히 옛적에
멸절된 생물군과 환수들은 은하제국에 있어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서기 2039년의 13일 전쟁시 핵무기로 인해 각지의
문명·사적지들은 이전과 다소 지형이 바껴 버린채 폐허로 남아있는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북동부에 위치한
수상도시 베니스는 갯벌에 다량의 통나무 말뚝을 박아 이를 토대로 건물을 지은 곳이었다. 태생부터 침몰의 운명을 지닌 이 도시가
할케기니아에 '아쿠레이아'란 이름으로 중세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었다. 20세기 이후 기념품 가게와 호텔과 레스토랑으로 가득찬
관광지가 아닌 사람이 실제로 살고있는 도시로.
게이트 통과가 인체에 끼치는 영향은 조사가 진행된 지 몇개월이
지나도 미지수로 남아 있었다. 프레데리카는 할케기니아 어를 할수있게 된 것 이외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양이었는데,
'계약'이 뇌에 끼치는 영향이 명확하지 않았다. 양은 루이즈를 딸처럼 귀여워 하고 있었지만 이것이 마법에 의한 세뇌일 가능성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양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자 고용주인 사랑스러운 소녀. 고집이 세 솔직한 성격은 아니지만 근본은
상냥하고 착한 이 분홍머리 소녀는 양이 루이즈를 귀여워 하는 이상으로 양을 아버지처럼 따르고 있었다. 이 탓에 양자의 관계가 정말
마법에 의한 세뇌의 영향인 지 알 수가 없었다. 루이즈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면서 속으로 악의와 적대감을 갖고 있을 남자라고는
도저히 상상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여튼 간에 라인하르트는 전 우주를 얻길 원했지만 파괴를 원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1521년에 아즈텍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나 1532년에 잉카를 멸망시킨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같은 문명 파괴자가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편견과 선입견, 독선으로 외부 문명을 악으로 단정해 파괴하는 어리석음은 은하 제국에 있어 TV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야만적인 방법이었다. 또 영토의 측면을 보자면 제2지구는 단지 행성 하나에 불과하고, 이와 비슷한 행성은 이쪽 우주에서
얼마든지 있었다. 그 좁은 행성에서 수많은 세력들이 군웅 할거를 반복해오고 있는데 그들을 정복하게 되면 트리스테인이나 갈리아,
알비온은 물론 엘프와 오크, 뱀파이어 등 이제껏 제국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생물체들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다. 사고방식부터
모든것이 다른 상대를 상대로 제국의 법과 정의를 일일이 설명하고 통제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일부는 '게이트 완전 소멸을
통한 해결'을 주장하기도 했지만 안전한 파괴방법을 알 수없는 지금에서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결론을 말 하면
제2지구를 정복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은하제국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그 문명과 생태계를 그대로 보존하는 쪽이 훨씬 가치가
있었다. 제2거기에 '허무'를 비롯한 계통마법이나 엘프나 아인종들이 사용하는 선주마법 등은 일부 측면에서 과학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교류·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제국의 기술력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는 기회였다. 때문에 관측 거점이 된
이제르론요새는 전 우주에서 찾아온 과학자, 기술자, 문화·언론인, 네고시에이터나 사기꾼은 물론 단순한 호사가들까지 몰려들고 있어
실무 관리자인 카젤느 중장이나 사령관 대행 메르카츠 객원 제독은 제국군 뿐 아닌 이들에 대한 대응으로 매일 쫓기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은하 제국과 이제르론은 할케기니아 인들의 성지 탈환운동을 멈추게 하고, 게이트 폭발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더욱이 제2지구의 조사와 양의 신병확보는 은하제국에 더없이 중요한 사안이었다. 민주 공화제의 아이콘인 양을 발견·회수하는것은
은하제국에 대한 공화주의자들의 반감을 죽이고 제국에 대한 협력과 이해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었고, 제2지구 및 평행세계 진출은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대사건이자 제국에 대한 반감에 눈을 돌릴만한 것이었으니까.
엘프라고 원래 호전적인 종족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저항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은하제국의 기술·군사력이 뛰어난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거기에 소환게이트 사건을
해결하려는데에 목적이 일치하고 있었다. 마법이나 환수들에 대한 노골적인 호기심과 탐구욕은 거부감이 들었지만, 은하제국과 이제르론이
대화가 가능한 상대라는것은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전략이 연방과 갈리아, 엘프, 그리고 은하 제국이 공동으로
주창하는 '평화 선언'이었다. 성지 탈환은 더 이상 의미가 없으며 실행도 불가능하다고 인식시키는 것이다. 거기에 모든 '허무'의
사용자들을 모아 그들의 이해와 협력을 얻을 수 있다면 문제는 대부분 해결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전략에 끝까지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인물이 있었다. 피아니스트이자 수채화가에, 산문시인에 미술·골동품 수집가인 이색군인 '예술가 제독'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상급대장이었다. 그는 원래 군인을 지망한 것이 아니었지만, 예술가로서 인정받지 못하다 생활 수단으로서 군인이 된 자였다. 그가
지금 사령실을 뒤로하고 라운지로 가고 있었다.
라운지의 창문에는 400m정도로 확대된 게이트의 모습이 비쳤다.
그리고 그 주위엔 게이트를 확대시키고 있는 약 천척 가량의 함대가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리고 통과를 기다리는 전열 또한 끝없이
줄을 짓고 있었다. 함대의 통과는 수십시간 전부터 시작됐지만 게이트를 통과하는 함은 전부 원격 조작 및 자동조종으로 이동 중이라
성지의 대기나 땅이 흉포해 지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분당 2척 정도의 느긋한 속도로 전송이 이뤄지고 있었고 함대는 절반도 채
통과하지 못했다. 그리고 로비엔 수많은 관람자들과 군인, 창문으로 보이는 군함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면서 메크링거는 손에 든 와인병을 글래스에 붓고 단숨에 들이켰다.
"
뭐가, 뭐가 양 우주의 평화냐...이건 문명의 교류다! 할케기니아는 브리밀 신앙을 기초로 한 귀족사회야! 믿음의 기반이 되는
성지와 시조의 진실을 알려주면 그들의 믿음도, 사회제도도 붕괴되는 거라고! 필시 마법 문명도 쇠퇴할테고...브리밀 신앙 자체도
훌륭한 하나의 문화임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 그들이 만든 교회, 조각, 성전은 오늘로서 13일 전쟁의 원자탄에 맞은것 처럼
붕괴됐다! 한번 잃어버린 문명과 생태계를 회복할 기회라 수없이 말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파괴하려는 거라고!!"
그는 한바탕 욕을 퍼부으면서 다시 글래스에 가득 와인을 붓고는 순식간에 들이켰다.
"...여기 계섰습니까. 하실 말은 다 하셨나요?"
등 뒤에서 말을 걸어온 것은 율리안이었다.
"아직 한참 남았지...아니, 몇번이라도 다시 말해 주겠어! 황제 폐하도, 너희들도 모두 야만인이야! 문화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원시인이란 말이다!!"
메크링거는 진심으로 경멸의 말을 내 뱉고는 아예 병을 들어 통째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율리안은 더 이상 말을 걸 수 없었다.
율리안과 메크링거는 알고 있었다.
향
후 나타날 모든 '허무'의 사용자들에게 이해와 협력을 구하지 않으면 제2, 제3의 '성지의 문'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수천년에
한번 나타날지 모를 것이지만 한번 나타나면 두 세계에 무자비한 파괴와 죽음을 만들 잔혹한 마법. 이를 막기 위해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정령마법이나 계통마법 등 과학을 초월한 의료기술은 당장에라도 쓸 수 있다. 그 외에도 마법과 과학의 융합,
다양한 정보와 생태계가 두 문명의 발전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는 쉽게 상상할 수가 없다. 평행세계의 존재를 인식하고,
이동방법을 발견한 시점에서 두 세계의 접촉은 피할 수 없는 것이 됐다. 그렇다면 라인하르트와 양의 힘과 지략을 모아 최선이 아닌
차선책을 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쌍방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메크링거는 이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다들, 두
문명이 만나는 시점에서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패라는걸 왜 모르는 걸까... 한때 신천지를 발견했다고 상륙한 선원들이 들여온
동식물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유종들이 멸종했는지 왜 모르는 거냐고? 지난 육천년간 소환 게이트를 통해 이쪽우주에서 각종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반입됐을거라 생각하면 새로운 감염 확대 위험은 낮겠지만 아직 반입되지 않은 병원균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거기다
저쪽에서 이쪽으로 옮겨오는 새로운 질병이 생길 가능성도 높은데!!"
예술가 제독은 술을 들이키면서 계속 불평을 쏟아냈다.
주변에 율리안과 다른 장교, 취재를 계속하는 언론인이 있던지 신경않고 계속 술을 들이켰다. 취재를 하던 누군가가 대담하게 황제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 메크링거를 알아보고 취재하려 했지만 율리안이 막아섰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고 있건 없건, 함대는 빛나는 거울
속으로 질서 정연하게 들어가고 있었다.
메크링거는 예술가로서도 제법 성공한 축 아니었었나...?
뭐 여하튼 이 이후로는 디씨 카툰 갤러리에서 속되게 말하는 '찍싼 결말'입니다. 제로의 사역마가 완결나지 않은 시점에서 격차가 너무 큰 두 세계를 합치려다 압도당했다 봐야 하나요...뭐 여튼 앙리에타 빼고 대부분 잘됐군 잘됐어로 끝나요.
그리고 이번화 하면서 이 작가 필력이 아주 좋지많은 않구나 하는걸 느낀게, 메크링거가 사령실을 뛰쳐 나가고 율리안과 미터마이어가 서로 이야기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처음엔 대체 이 두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건지 도저히 감이 안 잡혀서 한 몇십번 읽다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되서 넘겼고, 메크링거의 푸념이 나오고 나서야 무슨 말인질 알았습니다. 용두사미 결말과 함께 생각해 보면 이때를 전후로 뭔가 개인적으로 쫓히는 게 있었지 않았나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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